'트로이 목마'된 지은희의 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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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희영(右)이 캐디와 함께 코스 공략을 논의하고 있다.[KLPGA 제공]

'트로이의 목마가 된 지은희의 52도 웨지(Wedge)'.

12일 전남 함평의 다이너스티 골프장에서 끝난 KB국민은행 스타투어 2차 대회에서 지은희(캘러웨이)가 박희영(이수건설)을 연장전에서 꺾고 우승했다. 지은희는 2주 연속 우승했고, 박희영은 2주 연속 준우승했다.

그러나 우승의 향방은 '박희영의 캐디 백에 들어가 있던 지은희의 웨지'가 바꿔놓았다.

사연은 이렇다. 우승을 다투던 지은희와 박희영은 최종 3라운드를 앞두고 연습 그린에서 똑같이 웨지로 어프로치샷 연습을 했다. 두 선수는 경기를 위해 1번 티로 이동했으나 약속이나 한 듯 티잉 그라운드 앞에 있는 출발 텐트에 웨지를 두고 나왔다. 출발 텐트에 있던 경기 위원이 "잊지 말고 챙겨 가라"며 2개의 웨지를 나중에 티샷한 박희영에게 줬고, 박희영은 이를 자신의 캐디에게 건넸다. 그런데 박희영의 캐디가 지은희에게 웨지를 건네준다는 것을 깜빡했다.

지은희는 1번 홀 그린 근처에서 어프로치샷을 준비하다가 웨지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캐디가 "박희영의 캐디가 웨지 2개를 백에 넣는 것을 봤다"고 지적했고, 박희영의 백에 규정(14개)보다 많은 15개의 클럽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골프 규칙 제4조(클럽) 4항에 따르면 규정보다 많은 채를 갖고 플레이하면 홀당 2벌타를 받는다.

박희영은 1번 홀에서 버디를 했지만 2벌타로 '보기'를 기록해야 했다. 박희영은 "비도 오고, 빨리 티샷을 하라고 독촉하는 바람에 캐디가 지은희에게 웨지를 준다는 것을 잊고 그냥 가방에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은희에 1타 차 2위로 3라운드를 시작한 박희영은 1번 홀에서 공동 선두가 될 수 있었지만 오히려 2타 차로 벌어졌다. 박희영은 이후 5개의 버디를 잡으며 맹추격했다. 박희영의 캐디는 실수를 만회하려 페어웨이에서 그린까지 뛰어다니며 거리를 재곤 했다. 그러나 최종 합계 9언더파로 지은희와 동타였고, 연장 첫 홀에서 져 눈물을 흘렸다. 벌타가 아니었으면 박희영의 2타 차 우승이었다.

지난주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던 지은희는 시즌 다승(2승) 1위, 상금(9587만원) 1위로 뛰어올랐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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