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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은행주장 엇갈려/230억 예금 인출사건 의문점 투성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군관계 인물 배후 가능성/“인감 찍힌 청구서 받고 돈맡았다” 은행측
은행대리인 형과 부동산업자인 동생이 짜고 보험회사가 입금한 2백30억원의 거금을 인출한 사기사건은 검거된 범인중 1명은 은행대리 정덕현과 피해자인 보험회사·은행측의 진술이 엇갈리고 보험회사가 사기를 당한 과정 자체가 모호해 의혹만 증폭시키고 있다.
더욱이 보험회사가 사기당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관계자라고 사칭한 「정명우」가 등장하는 등 배후에 또다른 조직이 있음이 확실시되고 있다.
또 돈을 맡았던 국민은행측은 『제일생명 관계자의 협조가 없었다면 은행대리의 조작만으로 2백억원이 넘는 거액인출이 불가능하다』며 보험회사측에 책임을 돌리고 있어 사건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나 제일생명측은 정 대리가 빼돌린 2백30억원에 대한 즉각 반환을 요구하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의문점=거대 금융기관인 보험회사가 어떻게 사기사건에 말려들게 됐는지가 가장 큰 의문점이다.
제일생명측이 서초동 정보사부지를 불하받으려고 하다 사기당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지만 일개 개인이 아닌 보험회사가 치밀한 조사도 없이 선뜻 돈을 투자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결과 제일생명을 믿게 하기 위해 국방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정명우」라는 가명의 인물이 등장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전문가라고 할 보험회사측이 정씨를 믿을만 하다고 판단하게 된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합참군사연구실 예비역대령이 최근 정보사부지 불하를 미끼로 50억원을 사취해 홍콩으로 달아난 사실 등으로 미뤄 정명우라는 인물이 실제로 국방부와 관계있는 인물이거나 배후에 어떤 조직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사부지에 대한 사기사건이 계속 언론에 보도됐는데도 제일생명측이 아무런 사후확인 조치를 않은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경찰은 제일생명 간부중 달아난 부동산브로커 정씨와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다.
◇양측 주장=이번 사건의 책임을 둘러싸고 은행과 보험회사측은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 대리는 경찰에서 『돈을 입금할 당시 제일생명측으로부터 정보사부지 매매 중개인인 동생이 인출을 요구하면 언제라도 돈을 지급해 주라는 말을 들었다』며 『동생이 계약금 지급을 위해 돈을 인출하는 것으로 알고 돈을 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 대리는 또 『입금당시 아무때나 인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일생명 윤성식상무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 30장까지 윤 상무로부터 받아둔 상태』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측은 정 대리의 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은행은 돈을 맡았다가 예금주의 요구에 의해 지불해 줬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일생명측은 『경리담당자가 돈이 입금돼 있는 것처럼 꾸며달라고 부탁하거나 윤 상무가 정 대리에게 예금청구서 30장을 준 사실이 없다』며 『은행의 돈을 갚지않기 위해 책임을 미루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범인 주변=정 대리는 73년 K농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국민은행에 입사,주로 전산·예금담당부서에서 근무했으며 컴퓨터조작 등에 능숙해 손쉽게 통장위조가 가능했다.
정 대리는 2백30억원을 인출해 달아난 동생으로부터 2억원을 사례금으로 받아 삼성동에 1억5천만원짜리 오피스텔과 그랜저승용차를 구입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2백억원이 넘는 돈을 넘겨주면서 받은 사례금이 2억원에 불과했다는 부분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달아난 동생 정씨는 부동산소개인 성무건설 사장으로 5월 서초동에 60평짜리 빌라(시가 7억원 상당)를 구입하고 집안에 이탈리아제 가구를 들여놓는 등 호화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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