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가로 다시 뜬 ‘스윙 머신’ 닉 팔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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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16면

영국 골프의 전설 닉 팔도(49·사진). 마스터스 3회, 브리티시 오픈 3회 등 메이저 대회 6승의 빛나는 커리어가 팔도를 빛나게 한다. 하지만 팔도는 화려한 경력이 무색하게 ‘더러운 닉(Nasty Nick)’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현역 시절 팔도는 말 없기로 소문났다. 오죽했으면 마크 캘커베키아가 “팔도와 경기하는 건 혼자 라운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을까. 팔도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팔도는 “고개를 숙인 채 벽을 치고 나만의 세계에서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CBS와 골프 채널(The Golf Channel)의 해설자가 됐다. 제대로 할까 싶었지만 천만에, 그는 ‘어록 메이커’가 됐다.

그의 거침없고 솔직한 코멘트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50을 바라보는 팔도는 TV 중계석의 ‘착한 닉(Nice Nick)’이 되어 또 한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팔도는 이제 대회 전 선수들을 취재하며 농담을 주고받고, 그런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로 시청자를 즐겁게 한다.

CBS 골프 중계팀 동료이자 1976년에 함께 프로에 데뷔한 데이비드 페허티는 “팔도는 선수 시절 친구가 없었을 것이다. 그를 30년 전 처음 만났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2005년 뷰익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의 일. 타이거 우즈의 아이언 샷이 빗나갔다. 팔도는 해설자석에서 “완전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선수 출신의 해설가들은 동료의 플레이를 비판하지 않는 게 관례다. 자신을 험담하는 사람들과는 접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우즈는 그 후 팔도와 말을 하지 않았다.

1년 반이 지나 열린 2006년 브리티시 오픈. 첫 두 라운드에서 우즈와 팔도는 한 조에 편성됐다. 당시 우즈는 “팔도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팔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고 첫 홀 티박스에서 우즈에게 다가갔다.

“이봐 타이거, 영국 도박사들이 우리가 주먹다짐할 거라는 데 25대1 배당을 걸었더군. 돈 걸고 싸움이나 한 판 할까?”

팔도를 모른 척하던 우즈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200만 달러 낼게요.”

“그럼 자네가 5000만 달러를 따겠군. 난 20퍼센트만 가질게.”

이로써 둘의 냉전은 끝났다. 우즈는 생애 세 번째 브리티시 오픈 타이틀을 차지했고, 팔도는 ‘골프 황제’와의 라운드를 통해 TV 해설에 유용한 정보를 보따리째 챙겼다. 팔도는 말한다.

“시청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건 단순히 티샷 비거리가 어느 정도고, 퍼팅 수가 몇 개인지가 아닙니다. 골퍼들이 경기 중 어떤 생각을 하는지, 경기 중 스윙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하는 것들이죠. 그래서 대회 전 연습장이나 선수 라커룸에 들르곤 합니다.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죠.”

선수로서 전성기를 지난 이제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팔도. 하지만 그에게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선수 시절의 그는 ‘스윙 머신’으로 불린 연습벌레였다. 해설자 팔도는 연습장이나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언제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열심히 메모한다. 그 성실함은 버릴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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