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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기소 일 의사 안락사 파문(해외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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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생명의 존엄성 싸고 논쟁확산/가족 부탁받고 말기 암환자 치사/「존엄사」 관련원칙 확립 계기될듯
불치의 병에 걸려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가족의 부탁에 따라 안락사 시킨 의사가 살인죄로 기소돼 일본사회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횡빈)지검은 2일 입원중이던 말기 암환자의 정맥에 염화칼륨을 주사,사망케한 도카이(동해)대 의대부속병원 의사 도쿠나가 마사히토(덕영아인·36)를 살인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도쿠나가는 지난해 4월13일 환자를 편안하게 죽게하고 싶다는 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안락사시켰다. 그러나 9월 초순 경찰의 검시로 환자의 사망원인이 밝혀지면서 사회문제화 하기 시작했다.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연명장치를 거부,자기의 의사로 죽음을 선택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반대하는 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검찰이 어떻게 다룰까가 사회적 관심거리가 됐다.
검찰은 『도쿠나가는 환자 본인의 승낙을 받지않았으며 환자가 혼수상태에 있어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있었으므로 안락사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도쿠나가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검찰은 또 도쿠나가가 염화칼륨 정맥주사를 놓으면 환자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사했으므로 살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그러나 살인교사 혐의로 수사하던 환자가족에 대해서는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방법으로 안락사를 요청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형사책임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52년 나고야(명고옥) 고등법원에서 안락사의 허용조건으로 ▲병이 불치로 죽음이 목전에 이르렀고 ▲격렬한 통증이 있고 ▲환자에게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만이 목적이고 ▲환자가 확실히 안락사를 위탁,승낙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의사의 손으로 하며 ▲방법이 윤리적일 것 등 6개사항을 열거했다. 이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위법이라고 나고야 고법은 판시했다.
지금까지 안락사에 관한 6회 판결은 모두 유죄로 내려졌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들 사건은 모두 환자 가족들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의사가 개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의사가 업무와 관련,살인혐의로 기소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요코하마 지검은 나고야고법의 판례를 참고로 했으나 도쿠나가의 경우 통증·환자의 승낙·윤리적 방법이라는 면에서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안락사가 아니라고 판단,기소했다.
검찰은 염화칼륨 주사는 명백한 살인행위로 생명연장장치 제거라든가,치료중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고 염화칼륨주사 행위에 초점을 맞춰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일본 국내에선 찬반 양론이 비등하고 있다.
일본 존엄사협회(회장 식송정·일교대 명예교수)는 『환자가 혼수상태에 있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므로 서둘러 안락사시킬 필요가 없지 않았는가』라고 의사를 비판하면서도 『의사의 행위에 동정이 간다. 검찰의 판단은 안락사를 부정하는 것 같다』며 안락사제도 확립을 역설했다.
일반인들 가운데는 환자가족을 처벌않고 의사만 기소하는 것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의사회 생명윤리위원 간담회는 『환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안락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선택하는 존엄사에 관해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일본에서 안락사 문제에 관한 하나의 원칙이 세워지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재판결과가 주목된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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