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번째 독자 개발 … 국산화가 세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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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채종서 박사가 사이클로트론 앞에서 부품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한국은 2002년 세계에서 5번째로 독자적으로 의료용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한 국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레이야드 카멜 박사는 그 당시 "개도국에 사이클로트론을 무상으로 주거나 협력 기금 지원을 20년 넘게 해 왔지만 독자 모델을 개발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국산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한 사람이 원자력의학원 채종서(48) 박사다.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이클로트론의 세계적 전문가로 인정받아 국내외 곳곳으로 불려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정읍의 방사선과학연구소와 부산.광주.대구.춘천.전주 등 전국 7개 권역 사이클로트론센터 구축에 채 박사가 개발한 장비가 모두 설치되고 있다. 그가 국산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외제를 모두 들여오거나 아니면 사이클로트론센터 구축을 정부가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덕에 지방에서도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로 암 진찰 등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종류에 따라 2분~2시간만 지나면 약효가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사이클로트론이 PET 가까운 곳에 없으면 PET를 사용하기 어렵다.

베트남 하노이에도 국산 사이클로트론이 들어가 한.베트남 사이클로트론센터가 만들어진다. 이미 정부 간 합의가 이뤄져 구체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채 박사를 '해결사'로 초청해 7월 출장을 간다. 인도네시아가 외국의 한 업체로부터 받은 사이클로트론이 자꾸 고장나 말썽을 일으키는 데다 제작사가 과도한 수리비를 청구하자 채 박사를 부른 것이다. 그 여행 경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인도네시아를 대신해 국제협력비로 모두 댄다.

◆ 처음 개발할 때 사기로 몰리기도=채 박사가 2000년 실험실용 사이클로트론 시제품을 처음 개발했을 때였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한국에서 독자기술로 개발할 수 있느냐며 '사기'라는 소문까지 퍼졌다.'고위층'들을 사이클로트론 옆에 모셔 CCTV(폐쇄회로TV)로 빔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여줘도 '카메라도 조작할 수 있다'며 도통 믿으려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채 박사가 방사선이 나오는 사이클로트론 내부를 맨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시범으로 보인 뒤 그렇게 주장하는 고위층도 맨눈으로 보게 했다. 그 이후 사기 소문은 없어졌다.

채 박사는 2300여 개의 부품 중 핵심 부품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만들기 어려운 서너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에서 만들었다. 강력한 전자석을 둘러싸고 있는 고순도 철도 외국 것이 더 싼데도 불구하고 포스코에 주문해 썼다. 외제 부품을 들여와 조립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채 박사는 "국내 엔지니어링 기술 수준이 높아 두어 번만 직접 만들어보면 선진국 수준에 금방 올라선다"며 사이클로트론 개발 경험담을 말했다. 사이클로트론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선진국도 제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고품질의 고주파 부품을 구로동의 조그만 영세 기공소에서 세 번 시도 끝에 만들었으며 자석의 경우도 대구의 조그만 중소기업에 맡겼는데 두 번째 제품은 몰라볼 정도로 성능과 외형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 세계 명성 얻기까지 25년 걸려=그가 처음 사이클로트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원자력의학원에 외제 사이클로트론이 설치되기 시작한 1984년부터다. 그는 수리와 운전을 담당했다. 그 일을 10여 년 하다 보니 뭔가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1999년 정부에 신청한 연구 비가 나온 것이 개발 욕심에 불을 댕겼다. 당시 포항공대 오세웅 교수(작고)가 빔 궤적을 직접 계산하고, 국내에서 각종 부품을 만들어 시제품을 2000년 개발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상용제품을 20002년, 그 후속 모델을 2006년에 개발했다.

채 박사는 "80년대부터 외제 사이클로트론을 운용하고 있었으나 세계사이클로트론학회에서 눈길도 주지 않았다"며 "어설프나마 독자 모델 개발 이후인 2005년 학회에 초청을 받았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현재 초전도체를 이용한 고성능 사이클로트론을 개발 중이다. 또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에도 흔한 토륨을 원자력발전소 원료로 쓰게 하는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하는 게 꿈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bpark@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사이클로트론=1932년 미국의 물리학자 E O 로렌스가 처음 발명해 노벨상을 탔다. 전자나 양성자·중이온을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과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한다. 국산 사이클로트론은 수소 양성자를 가속해 방사선을 내뿜는 불소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든다. 이것을 인체에 주사해야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로 암 등을 진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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