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가 이런 식이라면 경선도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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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박근혜 전 대표의 한마디에 당은 경악했다. '경선이 없을 수 있다'는 얘기는 박 전 대표 캠프 일각에서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같은 시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당사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박 전 대표의 경선 불참 시사에 이 전 시장 측은 "남의 잔칫날 찬물을 끼얹는 거냐"고 불쾌해 했다. "이러다 정말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당내에 확산됐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캠프 사무실→고양(당원 간담회)→수원(특강)→서울 등 수도권 일대를 돌았다.

하루 종일 따라다닌 기자들에게 "(강재섭 중재안은) 거부죠. 받아들일 수 없죠"를 반복했다.

-강 대표가 중재안을 밀어붙이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당이 아니지 않나. 얼마나 어렵게 일으켜 세운 당인데, 한 분의 이익 때문에 공당의 원칙을 깨나."

-이 전 시장이 오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내가 확실하게 이길 때까지 룰을 계속 바꾸겠다는 것은 룰이 아니다. 그런 정당이 신뢰받고 민주 원칙을 지킬 수 있나. 공당이 아니고 사당이다. 지금껏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려 한다. 경선도 이렇게 해서는 치를 수 없죠."

박 전 대표의 경선 불출마 입장 시사가 중재안을 철회하라는 압박인지, 실제 불출마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현재로선 "경선 불참보다 합의 원안대로 가자는 비폭력 저항에 무게중심이 있다"(측근 의원들)는 주장이 많다.

당 전국위원회의 최종 표 대결에 이를 때까지 단계마다 '강재섭 중재안'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투쟁하겠다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은 "불출마 시사와 표 대결 투쟁,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돼 있다"고 해석했다.

경선 불참을 선택하게 된다면 '박근혜의 길'은 어떤 것일까.

박 전 대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나 홀로 정당'(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다. 경선 룰 문제를 놓고 당시로선 절대 강자였던 이회창 총재와 다퉜다. 그때도 원칙과 명분을 앞세웠다. 그런 추억을 가진 박 전 대표가 강재섭 중재안으로 치러지는 경선에 참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측근은 전망했다. 게다가 그에겐 20%를 넘나드는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 있다. 다만 다른 측근은 "이회창 총재 때와 달리 박 전 대표는 지금의 한나라당을 자신이 살린 당으로 지극한 애착을 갖고 있다"며 "경선에 불참한다 해도 탈당은 안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경선은 없어지고, 이명박 전 시장을 당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박 전 대표 측이 사용하는 식이 된다.

박 전 대표는 퇴로 없는 '벼랑 끝 전술'을 택했다. 표 대결의 승패는 안개 속이다. 당을 반분하는 박 전 대표 측의 저항이 격렬할 경우 전국위원회 개최 자체가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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