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하차도 너무 서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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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시가 내년 말 착공을 목표로 추진중인 지하도로 건설이 졸속우려를 낳고있다. 이는 서울시가 지하도로 건설과 관련한 충분한 여론 수렴, 기술적인 문제점 및 타당성 검토 등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지난해 5월 건설계획 발표 후 2년여만에 착공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전문가들은 『지상도로가 포화상태에 이르는 2000년대에 대비한 지하차도 건설은 불가피하나 외국에서도 타당성조사와 기본설계에만 6∼7년 걸리는 사업을 기술축적도 안된 상태에서 서둘러 착공할 경우 시행착오와 졸속을 낳을 우려가 있다』며 착공이 늦어지더라도 완벽한 사전 준비를 갖추고 공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29일 시민공청회를 연 뒤 기본설계에 나서 4개 노선 가운데 내년 말 1개구간에 대해 공사를 시작할 방침이다.
추진일정=서울시는 지난해 5월 전임 이해원시장의 지시로 지하도로 건설계획을 수립해 타당성조사용역을 국토개발연구원에 발주, 6월까지 용역작업을 마무리짓고 29일 공청회를 갖는다.
공청회자료에 따르면 이미 노선이 잠정 결정된 ▲창동∼강남(18㎞) ◆영등포∼성수 (13.8㎞) ▲구파발∼관악 (17.7㎞) ▲수색∼망우 (9.5㎞)등 「격」자형 4개 노선 가운데 먼저 가장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 창동∼강남 축 노선을 내년 말 착공한다.
90년대 말 완공예정인 1단계공사구간중 진·출입로는 미아리·동대문·장충동·한남동·논현동 등 5곳에 설치된다.
용역과정에서는 승용차전용도로를 염두에 두고 타당성조사를 벌였으나 이는 대중교통 시설망 확충추세를 거스른다는 여론이 일자 버스·승용차 혼용도로로 건설하는 것 등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공청회 등에서 여론을 수렴, 기본설계와 시설설계 때 최종 결정키로 했다.
창동∼강남구간 공사가 80%쯤 진척되면 영등포∼성수 축에 대한 설계에 나서 2단계 공사를 98년께 시작하고 2010년까지 구파발∼관악, 수색∼망우축 구간공사를 완공시킨다는 계획이다.
무리한 추진=시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교통체계를 크게 뒤바꿔 놓을 만한 정책을 기본구상에서부터 2년만에 공사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나라 여건상 너무 성급한 추진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외국의 지하차도건설과 비교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지하도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는 지난 87년 파리시내 50㎞규모의 LASER계획과 20㎞규모의 RSP 건설계획을 세운 후 6년째 설계에만 매달리고 있다. 또 동경 환상 신숙선도 7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착공됐고 노르웨이 오슬로 지하도로는 6년의 설계기간이 소요됐었다.
때문에 지하도로 건설담당 간부들마저 기본·실시설계를 앞으로 2년여만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재원마련계획도 막연한 상태이지만 시는 지상도로 6차선을 건설할 경우 엄청난 보상비로 ㎞당 1천5백억원의 공사비가 소요되는데 비해 지하차도는 3백50억원 선에 그쳐 경제성도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4개 노선 전체 공사비는 약2조4천억원.
그러나 이는 타당성 검토 단계에서 어림짐작한 비용일 뿐 용역결과 ㎞당 공사비는 4백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나 착공을 불과1년 앞두고서도 정확한 소요예산규모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아직 구상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서울시 지하권 개발계획과의 전반적이고 유기적인 검토 없이 지하차도만 단독으로 추진하는 것은 도시의 종합적인 개발방침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밖에 지하도로 건설계획을 확정짓기에 앞서 공청회-타당성검토의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 건설을 전제로 한 타당성검토를 거쳐 공청회를 개최함으로써 공청회를 이미 결정된 정책을 소개하는 요식 절차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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