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과 동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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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은 금으로 만들었든 은으로 만들었든 모든 주화를 보통 「동전」이라 부르지만 8·15이전까지만 해도 엽전이라 통칭했다.
철·구리·주석 등으로 만들어진 모든 주화를 엽전이라 했으니 동전보다는 보편적 의미일듯 싶다.
엽전을 동전으로 부르게 된데는 두가지 배경이 있을듯 하다. 그 하나는 동전이 발음상 동그랗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다른 하나는 엽전을 이따금 「봉건적 인습에서 탈피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대한 거부반응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엽전은 고려 성종때 만들어진 철전이 효시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나게 만들었는데,이것은 둥근 하늘과 모난 땅의 이치를 본뜬 것이라 했다.
조선중기에 상평통보가 만들어진 다음 이를 노래한 사설시조가 민간사회에서 널리 유행했다. 『떳떳상 평할평 통할통 보배보자/구멍은 네모지고 사면은 둥그러서/땍대글 구을러 간 곳마다 반기는구나/어쩌다 조그만 금조각을 두창이 다투거니 나는 아니 좋아라.』 조그마한 쇠붙이를 두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운다는 뜻이다.
그 옛날 엽전들이 지금도 경우에 따라서는 귀한 골동품적 가치를 지녀 높은 값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억대를 호가하는 것도 있고,수백만원짜리는 부지기수라니 혹 주화를 오래 보관해두면 후손들이라도 큰 덕을 보게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엽전 아닌 동전들은 제값도 못한다. 지나치게 흔한데다가 그 가치조차 나날이 떨어져가고 있는 탓이다. 후세의 골동품적 가치를 생각하고 지금의 동전을 곱게 보관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그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릴 듣게 될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행은 1원짜리와 5원짜리 동전의 제조발주를 하지 않기로 했다 한다. 별로 유통되지도 않는 돈을 그 10여배의 돈을 들여 만드느니 차라리 안만드는 것이 현명할는지도 모르지만 처음 만들어진 66년을 돌이켜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고,화폐로서의 당당한 가치를 지녔던 1원짜리·5원짜리 동전들의 모습이 처량하다. 그러고보면 아직도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엽전이 부럽고,엽전의 시대가 그리워진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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