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건강] 불러도 불러도 '……' 땐 자폐증 의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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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상의 빛을 본 지 365일째 되는 첫돌. 아이는 이 시기에 일생 중 가장 빠른 성장을 한다. 체격은 출생시 평균 3.3㎏에서 3배가 늘어 10㎏쯤 나가고, 키는 50㎝에서 50%나 껑충 자라 약 75㎝애 이른다. 신경계도 발달해 목도 못 가누던 아이는 혼자 서고, 좀 빠르면 발을 내딛기도 한다. 신체적 발달보다 더 경이로운 변화는 세상과의 친밀한 교류다. 10개월만 돼도 엄마.아빠를 불러 보고 '잼잼, 까꿍, 빠이빠이'를 시키면 어설프게 따라한다.

◆첫돌 때 성장.발육 상태 점검해야=아이의 발달 상태는 제각각이다. 또래보다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다. 또 행동이나 운동기능도 들쭉날쭉하다. 예컨대 어떤 아이는 뒤집고 기는 건 또래보다 빠르지만 혼자 서는 일은 돌잔치 이후에 한다. 10개월 때 다섯 가지 단어를 말하던 아이가 반년 이상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원칙은 있다.

우선 성장.발육은 단계별로 일어난다. 예컨대 목을 가눈 뒤, 뒤집기를 하는 식이다. 또 혼자 앉은 뒤에 기어다니다가 일어선다. 즉 지금 내 아이의 행동이 발육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다.

동신경.사회성.인지 능력.언어 능력 등이 월령에 맞게 골고루 비슷하게 발달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컨대 혼자 앉을 때쯤 되면 낯가림을 하고, 붙잡고 설 무렵엔 짝짜꿍도 한다.

물론 성장 발달이 또래보다 좀 늦다고 다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첫돌쯤 되면 또래 아이의 90% 이상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반응이 있어야 한다. <표 참조>

따라서 뭔가 남달리 늦다 싶거나 유별난 행동.반응이 발견될 땐 발달 상태를 점검하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실제 '좀 늦되려니…'하고 지나치다 자폐증.뇌성마비.정신지체.근육병.각종 신경계질환 등을 모든 증상이 완연해진 세 돌 무렵에야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첫돌 땐 이름 부르면 알고 반응해야 정상=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 사카마 아파마 교수 팀은 첫돌이 됐는데도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이 없다면 두 돌 때까지 자폐증, 혹은 다른 발달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소아.청소년 의학회지'에 발표했다. 통상 자폐증 부모의 절반은 첫돌 때 발달 장애가 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평균 진단 연령은 2.4세다. 따라서 이번 연구 결과는 자폐증을 조기 진단, 조기 치료할 수 있는 좋은 도구를 제시한 셈.

첫돌 때 이름을 불러 반응을 안 하는 또 다른 이유로 정신지체 등 뇌.신경계 질환이나 청력 이상을 꼽을 수 있다.

◆발견시기 따라 치료 효과 달라= 자폐증.뇌성마비 등 발달에 문제가 있는 뇌.신경계 질환도 조기 발견.치료가 예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완전 정상화하긴 힘든 뇌질환도 조기에 재활치료를 받고, 상태에 맞는 자극과 교육을 제공하면 정상에 가깝게 발달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 자폐증만 하더라도 조기에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도록 하는 행동교육 치료로 보존된 능력을 최대한 잘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컨대 이 닦기.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은 물론, 충동행동을 조절하는 법 등은 어릴수록 행동치료 효과가 높다.

발달 장애의 원인이 근육병이나 대사성 질환 등 유전질환이었다면 첫돌 때 아이의 질병을 발견해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산전 검사 등을 통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청력 이상이 발달 장애의 원인인 경우, 조기 진단.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힘들거나 영영 청력을 잃을 위험도 있다. 예컨대 청력장애는 선천성이기도 하지만 잦은 중이염이 반복돼 초래할 수 있다. 이때 조기치료 시기를 놓치면 청력을 잃을 뿐 아니라 언어.지능 발달에도 영향을 받는다.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정유숙 교수, 경희대병원 소아과 정사준 교수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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