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모임」뜻 외면한 대권후보들/오병상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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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오후 7시 한국종합전시관 지하1층 KOEX회관에서 열린 「깨끗한 정치선언을 지지하는 시민의 모임」발기대회는 시민이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이자 대의정치의 위탁자임을 확인하고자 한 뜻깊은 자리였다.
종교계지도자인 김수환추기경·강원용목사·송월주스님을 비롯한 시민대표 3백여명은 지난 3일 「깨끗한 정치」를 결의한 12명의 의원을 지지하기 위해 이날 모임을 마련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요구하는 깨끗한 정치가 12명의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계전반의 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정치권을 대표하는 각당 대표들도 초청했다.
모임의 주도자들은 3백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보면 시민의 대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주권자로서 「시민을 대신해 정치를 하라고 맡긴」국회의원들을 불러 자정을 약속받으려는 것도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인의 부름을 받은 국회의원의 수장들이 이같은 주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뜻깊은 주권행사모임에 흠을 남겼다.
김영삼민자당대표는 아예 초청에 불응해 주인의 뜻을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대권후보 4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경쟁을 조기과열시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4당 대통령후보가 동석하면 대권경쟁을 조기과열시킨다는 이유는 이 모임의 취지를 묵살할 수 있는 당당한 논리가 못된다. 주최측은 김 대표의 불참을 알리면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참석해 연설한 김대중민주당대표 역시 주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김 대표는 『우리당 소속 모든 의원이 「깨끗한 정치선언」에 참여할 방침』이라는 자세를 보였지만 곧장 정치부패의 책임을 정부·여당탓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깨끗한 정치구현의 해답을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정권을 교체하는 길밖에 없다』고 성급히 결론지었다. 정파를 불문하고 정치권 전체의 부패를 꾸짖는 주인앞에서 『내탓은 아니다』고 둘러댄 셈이다. 주최자인 서경석 경실련사무총장은 『유감스런 유세성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등단한 정주영국민·박찬종신정당대표도 자신들의 결백만을 주장했을뿐 어느 누구도 정치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대권만 좇느라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대통령후보 4명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이날 모임같은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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