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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회비 모아 점심식사 공동으로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자, 오늘은 뭘로 할까요.』
16일 오전11시50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내무부 공보계.
지방신문에 실린 내무행정 관련기사를 정리하던 안광호 행정주사가 스크랩북을 덮으며 묻는다.
『어제 구내식당에 갔으니 오늘은 밖에 나가 된장찌개나 먹지.』
김진국 계장의 말에 여직원을 제외한 5명은 하던 일을 정리하고 일어선다.
남자직원들이 빠져나가자 공보관실 등 여직원 4명이 사무실 칸막이 안쪽에 모여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연다.
30분쯤 후 청사 뒤편「먹자골목」의 된장찌개 전문음식점인 대복집. 식사를 마친 김 계장 등이 앞서 나가고 안 주사가 뒤에 남아 식사비 1만3천5백원을 지불한다. 안 주사는 공보계 직원 5명이 매월 초 급식비 5만원씩을 모아 운영하는「점심회」회계다.
공무원들 사이에 점심회는 보편적인 식사해결방식이다.
넉넉지 않은 월급에 남의 것까지 부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식당카운터 앞에서 각자 몫을 따로 내기도 어색해 공동관리방식의 점심회가 자연스레 공무원 점심행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점심회가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월급과는 별도로 5급 이하 공무원에게 급식비가 지급된 86년 이후. 주로 함께 식사하기 편한 계단위로 월 3만∼5만원씩 거두고 부족하면 나중에 정산한다.
또 점심회가 조직되어있지 않은 경우는 돌아가며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일반화되어있으며 여직원들은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가 많다.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아직도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상급자의 점심스케줄을 챙겨「모시는」일이 많고 일선 세무서나 구청 등의 경우는 이같은「전통」이 계장급으로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상하가 어울릴 때는 점차 위에서 부담하는 추세다. 과거 점심때면 부하 직원들이 상급자를 대접하는 풍토가 만연했던 때와는 격세지감.
최근 서울의 모 구청장은 손님들과 함께 관내 음식점에 들른 시장의 점심값을 지불했다가 이해원 시장으로부터 불호령을 당했다.
점심문제에 관한 공무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최근 일반식당의 음식값이 많이 올라 부담이 커진 점이다. 광화문과 과천의 정부종합청사 주변식당의 음식값이 불과 1년 사이에 20∼30%이상 올랐다. 된장이나 김치찌개도 웬만하면 3천원이고 삼계탕 등 별식은 5천∼6천원이다.
그러나 급식비는 89년 5만원으로 인상된 이후 3년째 동결돼 공무원들의 점심선택은 그만큼 폭이 좁아졌다. 이 때문에 1천∼3천원 하는 구내식당은 매일 붐빈다. 광화문 5백70석, 과천 2천1백30석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은 두곳을 합쳐 하루평균 3천9백명 선. 양쪽 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약40%가 매일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셈이다. 청사가 따로 떨어져 나와있는 환경처나 서울시교육청은 구내식당 이용자가 전체의 80%에 이른다.
이처럼 구내식당에 이용자가 몰리자 제1,2청사 식당측은 이용자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8일부터 국무위원용 외에는 직원용과 간부용의 구분을 없애 모두 셀프서비스로 하고 메뉴도 하루 5∼6종에서 2종으로 줄였다. 또 연간 6억∼8억원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가격을 30% 인상했다. 그 결과 길게 줄서 기다리는 불편이 많이 해소됐고 이용자들도 3%가량 늘어났다. 국무총리실 제5행정조정관실에서는 최근 공무원들의 외식문화를 지양하고 직원들간의 대화시간을 늘린다는 목적으로 매주 화요일을 도시락 싸오는 날로 정해 시범실시중이나 전체공무원사회로 확대될지는 미지수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기가 번거로울 뿐 아니라 사무실에 반찬냄새가 배 외부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어 직원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이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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