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떠난 김윤환, 출두한 이회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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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생긴 얼굴은 어디로 갔는가. 그 훤칠한 키는 어디에 감췄는가. 그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로 숨었는가.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두꺼운 이불 밑에 잠겨 있었다. 말라버린 얼굴은 해골이었다. 눈은 천장만을 응시했다. 얼음장 같은 손 위엔 거미줄 같은 핏줄이 솟아 있었다. 간간이 고통을 호소하는 "아"하는 소리만이 그의 영혼이 남아 있음을 알리는 듯했다.

별세하기 얼마 전, 허주(虛舟) 김윤환의 모습이다. 두 명의 대통령과 한 명의 대통령 후보를 만든 그다. 노태우.김영삼.이회창씨가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한 시대를 호령하고 풍미했던 허주였다. 한국 정치의 또다른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에서 어떤 한 순간의 역사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 모든 영욕을 품고 떠나려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사람의 손에 거세당했다. 바로 이회창씨다. 그는 허주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4년 전이다. 나름의 정치적 당위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허주는 배신의 아픔에만 빨려들었다. 아마도 그 미움이 스스로의 생을 재촉했는지 모른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에게 물었다.

"이회창씨가 사과를 하던가요?"

감은 듯 뜨고 있던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드러났다. 그의 대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비서에게 물었다. 얼마 전 이회창씨가 찾았을 때의 상황을 들었다. 이회창씨는 허주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한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허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천장만 바라보며 듣기만 했다고 한다. 그날 따라 허주는 아침부터 이상했다. 기력이 돌아왔다. 면도도 하고 세수도 했다. 그리고 이회창씨를 맞았다. 그러나 허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토록 기다리던 사과였는데 말이다. 떠난 허주만이 그 의미를 알리라. 허주의 방을 나선 이회창씨 부부는 차 한잔을 마셨다. 허주 부인 이절자씨가 차를 내왔다. 그 자리에서 한인옥씨가 말했다. 이절자씨를 향해서다.

"용서해 주세요." 그러나 이절자씨는 아무 말을 못했다. 용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허주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회창씨와 허주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사과는 있었지만 용서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회창씨의 검찰 출두 10분 뒤에 허주는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은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됐다. 용서의 기회마저 영원히 사라졌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늘의 우리를 생각게 한다. 무엇이 우리를 살리는가를. 무엇이 우리를 죽이는 것인가를.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이다. 한 사람의 증오가 상대를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기지는 못했다. 증오는 본인의 아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증오를 키우면 그만큼 스스로는 허물어져 갔다. 허주가 지었던 미소의 의미도 그것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증오를 심었다면 거둬야 한다. 아픔을 주었다면 풀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살리는 길이다. 동시에 상대도 살린다. 이회창씨가 일찍이 허주에게 사과를 했다고 치자. 용서를 빌었다 가정하자. 그랬어도 허주는 세상과 등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를 보내는 이회창씨 마음이 더 가벼웠을 것이다. 그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감정은 두 사람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그것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대선자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양쪽 모두 증오심을 불태운다. 현명한 한 쪽이 나타나길 바란다. 증오는 상대만 잘못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그 착각에서 깨어나길 기대한다. 나부터 잘못했다는 사과에서 재출발해야 한다.

이연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