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김승연과 경찰 오래된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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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피해자는 고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서울지검 특수1부가 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이 사건은 경찰 특수수사대장 M총경이 기소되면서 사표를 냈고 경위 1명이 구속되고 수사대원 몇 명이 불구속 기소된 것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김 회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부끄러운 뒷얘기가 있다. 이 사건을 제보받고 당시 언론의 보도내용을 확인하려 했지만 단 한 줄의 기사도 찾을 수 없었다. 새로 취임한 재벌 총수가 연루됐고, 경찰 특수수사대가 재벌의 해결사로 동원됐으며, 검찰의 수사로 경찰 특수수사대장이 옷을 벗었다면 엄청난 사건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 해답은 엉뚱한 데서 나왔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으로서 이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임상현 변호사는 "A신문이 특종을 해 윤전기가 돌아가고 있는데 한화와 권력기관이 개입해 기사를 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 이후 어떤 방송과 신문도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고, 묻혀졌다. 전두환 정권 초기의 살벌한 시기였으니 그런 언론 통제가 가능했으리라.

최근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이후 "2005년 3월 강남 룸살롱 종업원의 머리를 술병으로 내리쳤다"는 보도가 있었고 "술집에서 교사들과 충돌해 폭행한 적이 있다"는 말도 나왔다. 그가 6공 시절 경향신문 인수와 김대중 정권 시절 대한생명 인수 시 권력 실세와 어떻게 유착했는지에 대한 소문도 다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기업 총수라 해도 이렇게 인민재판식으로 과거의 모든 행적을 낱낱이 까발려서는 곤란하다. 이건 '가진 자'에 대한 대중의 증오심을 부추기는 인민재판과 다르지 않다. 이래서는 사태의 본질이 흐려진다.

그럼에도 굳이 81년 사건을 들춰낸 것은 최근 문제가 된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다. 우선 범행동기가 두 사건 모두 가족애였다. 거액을 챙기고는 아버지를 치료하기는커녕 돌아가시게 만든 데 대한, 또 차남이 10여 바늘 꿰매는 상처를 입은 데 대한 분노였다. 폭행의 성격은 납치와 보복이었고 경찰 특수수사대와 경호원이란 물리력이 동원됐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이 비호 의혹을 받고 있다. 김 회장과 경찰의 '각별한'인연은 오래전부터였다.

올 1월 한화가 최기문 전 경찰청장을 그룹 고문으로 영입하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검.판사 출신은 대기업의 고소.피고소 업무를 맡기기 위해 필요하다지만, 재벌이 경찰과 직접 부닥칠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건 발생 직후 최 전 청장은 고교 후배인 남대문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했고, 남대문서는 사건 발생 40여 일이 넘도록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그나마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김 회장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사전에 한화에 정보가 새어 나갔다. 이런 일들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사건이 불거진 뒤 한화가 내놓은 홍보자료가 있다. 김 회장이 평소 얼마나 의리를 중시하는지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고 있다. 그들은 의리의 반대말이 불의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패거리나 소집단을 옹호하는 의리는 사회 전체의 공의(公義)와 정의에 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김 회장은 경찰과 그런 사적 의리로 얽혀 있기에 마음대로 심야 활극을 펼쳤고, 경찰을 입막음함으로써 없던 일로 넘어가려 했던 건 아닐까.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