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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여성의 직업|개성 만들기, 색채 전문가, 여가 상담사, 아이디어산업 진출 급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서기 2000년6월10일 오전 10시.
어제 오후 슈퍼로부터 쿠리에 서비스(인편배달)로 받은 호박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것으로 간단하게 식구들의 아침식사를 대신한 L씨는 로봇에게 간단한 식당청소를 부탁한 후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앉은 그는 멀티비전을 향해 말했다. 『A132781 좀 대주세요.』 순간 화면에는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설계실 팀장P씨가 화면을 통해 다정하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잘 있었나. 그럼 슬슬 일을 시작해보지.』
L씨는 서울 태평로 지하도면을 화면 한 귀퉁이에 비추었다. 태평로는 지난 95년 지하개발 촉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서울시가 개발에 박차를 가해 지금부터 2년 전인 98년 지하도로망 건설 등 공공이용시설을 끝마친 지역이다. 그러자 지난해부터 민간 건설업자들이 지상의 낡은 건물들을 부수고 첨단장비를 갖춘 소위 인텔리전스빌딩 건축에 뛰어들기 시작, 지하건물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하건물은 지상건물에 비해 난방비가 80%나 절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에너지 절약차원에서도 큰 호평을 받고있다. 건축회사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L씨는 멀티비전에 나타난 도면상의 공기조절기 설치장소를 가리키며 『P부장의 의견을 수렴해 정정했다』고 말했다. P씨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지하개발 전문가인 Y씨를 화면으로 불러내 세 사람의 의견일치를 얻어내자 영상회의를 마감하고 화면 뒤로 사라졌다.
L씨는 새삼 ISDN(종합정보통신망)이 가져다준 재택근무의 편리함이 고맙게 느껴졌다.
출퇴근시간에 얽매여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커리어우먼」으로 활동할 수 있는 더 넓은 영역을 제공해준 셈이다.

<고정 직업관 변화>
통계청의 추산에 따르면 2000년의 한국 총인구는 4천6백78만9천명. 1990년 현재의 4천2백86만9천명보다 3백88만명이 늘어난 숫자다. 2000년의 여성인구는 2천3백23만명으로 이중 20∼59세의 경제활동 가능인구는 1천3백77만2천명에 달한다.
지금부터 꼭 8년 후인 2000년의 여성취업률이 얼마나 될지를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직업평론가 김농주씨(연세대 취업담당관)는 『미래에는 직업의 정의가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현재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한다. 즉 현재 통용되는 직업의 정의는 규칙적·주기적으로 일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것이지만, 2000년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며 더불어 사는데 일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개념전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취업률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통계수치들은 이 같은 전망의 근거가 되고있다. 전체취업자중 여성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5년 35%선에서 89년에는 40·0%, 90년에는 40·7%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여성인력 취업률은 일본과 비슷하며 45%대인 미국보다는 낮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직업의 개념을 적용하더라도 2000년에는 미국의 수준에 육박하리라고 내다보고 있다.
김씨는 『직종은 10년을 주기로 하여 4분의1정도가 없어지는 것이 상례였으나 앞으로는 3분의1정도가 교체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새로 나타나는 직업은 소프트화 되고 개별적인 것들로 여성들에게 적합한 것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8년 후인 2000년에는 소규모집단에 의한 아이디어 산업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그는 관측했다.

<제품 써본 후 광고>
과학의 발전은 역으로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감성에 대한 비중을 높이게 된다. 첨단기술과 인간감성의 교묘한 결합은 「센스 리더」의 등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센스 리더란 제품을 제작한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이를 알리는 방법으로 활용하는 일종의 PR그룹이다.
2000년의 주부들은 여전히 물품구매의 키를 쥐고있지만 이들이 제품선택의 정보를 얻는 방법은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시제품들을 미리 사용해본 센스 리더들은 3∼5주의 훈련을 거쳐 화상, 화면을 통해 직접 주부들을 설득한다.
색채문화가 활기를 띠게됨에 따라 수요가 늘게되는 색채 전문가라든가, 90년대 한국에도 이미 이미지메이킹업 등으로 선보이고 있는 특정인의 개성을 만들고 이를 유지시켜주는 일을 맡는 개성창출 전문가는 2000년대 더욱 늘어날 여성직종들이다. 특히 개성창출 전문가들은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과 궤를 같이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의 생명력 또한 짧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효용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이들 개성창출 전문가들도 의상·메이크업·음성·글쓰기 등 다양한 패턴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식품유통 전문가, 식품품질 관리사도 여성들의 새 직종으로 선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미래에서는 식량이 핵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와 함께 식품관리를 정부에만 의존해오던 데서 벗어나 소비자 스스로가 감시하려는 사회적 욕구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이 도입된 사무자동화 등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해결을 위해 새로운 직종을 개발케도 한다. 기계화의 지배 속에 인간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대화결핍은 가정문제 상담가들을 양산시킬 것이며, 알콜중독 치료사라든가, 불면증 치료를 위한 음악치료사 등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휴가 1년에 한달>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진출은 결혼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직업을 가진 여성을 배우자로 선호하는 경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에는 직업환경도 크게 달라져 지금처럼 1년 내내 일하는 것이 아니라 11개월 일하고 한 달은 휴가로 쉬는 형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가족중심의 여가생활이 크게 발달돼 여가상담자·여행전문가·시간관리 전문가들이 나타나게 된다.
2000년의 가정생활에서 직업과 연관돼 가장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은 가족들이 전세계를 무대로 하여 취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대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고급인력들의 해외진출은 지금까지처럼 「서울본사의 해외지점 근무」라거나 「해외본사의 서울지점 근무」보다는 오히려 「해외본사 근무」 또는 「해외본사의 또 다른 해외지점 근무」형태가 주종을 이루게 되리라는 것.
현재 영국의 경우, 대학졸업생의 4%가 외국기업의 일자리를 얻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2000년에는 현재 영국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이 같은 근무형태는 평상시 가족들이 한곳에 둥지를 틀고 살기 어려운 가족해체를 불러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구성원간의 끈끈한 사랑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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