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기부 직원을 몰라본 “죄”(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9일 오전 6시20분 서울 용산경찰서(서장 이수호) 교통과 사무실에서는 교통사고 피해자 서모씨(29·유흥업소 DJ)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아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신문에 나가면 전 큰일납니다. 사고낸 분은 안기부가 아니라 종로구청에 근무하는 분이라니까요.』
서씨는 이날 새벽 서울 한남동 모카페에서 DJ일을 마치고 나오다 웬 승용차가 주차해 놓은 자신의 차를 들이받는 것을 목격했다. 운전석으로 다가가자 술냄새가 확 풍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고가 났으니 차에서 내려주시죠. 아저씨 술드셨어요.』
『야,이××야. 내가 술을 왜마셔』 사고운전자는 갑자기 욕설을 퍼붓더니 그대로 차를 몰았다.
서씨는 곧바로 2백여m를 뒤쫓아가 운전자 임만혁씨(33)를 붙잡았다. 순간 주먹과 발이 마구잡이로 서씨의 온몸을 강타했다.
『안기부 직원을 뭘로 보는거야. 죽여버리겠어.』
임씨는 서씨가 맞는 것을 보다못한 시민들의 신고로 경찰서에 연행됐다.
그러나 사고를 낸 임씨는 교통경찰관들이 보는 앞에서 피해자인 서씨의 뺨까지 때리며 큰소리를 쳐댔다. 「안기부 수사관」이라는 임씨의 말 한마디에 경찰관들은 눈치보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연락을 받은 동료 3명이 몰려오자 임씨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사고사실을 취재하는 기자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으며 취재수첩을 빼앗아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결국 임씨는 단순폭력 및 도로교통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이날 오전 풀려났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추구한다』는 국가 주요기관 안기부.
그러나 임씨가 「안기부 직원」을 내세우며 피해자를 폭행하는 현장을 본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임씨와 같은 일부의 지각없는 행동 때문에 정말로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받게된다는 느낌이었다.<봉화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