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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 아내를 찾는 남자, 남편을 찾는 여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호 14면

한 허름한 사내가 아내의 고향을 찾는다. 16년 전 달아난 아내와 딸을 찾아서다. 그러나 그곳은 양쯔강 강물 속에 잠겨버렸다. 세계 최대의 댐이라는 싼샤(三峽)댐 공사로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 감독 자장커 주연 한산밍ㆍ자오타오 러닝타임:108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지만 아내를 찾을 기약은 없다. 사내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수몰 예정지 건물 철거 노동자로 일하며 만날 날을 기다린다.

말끔한 차림의 한 여인이 이곳에 나타난다. 파견근무를 나왔다가 2년 전부터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서다. 수소문 끝에 짐작대로 남편에겐 이미 현지의 여자가 있음을 알아챈다.

이 둘은 각자 사람을 찾아 수몰지구 주변을 헤매지만 결코 서로 만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이들이 헤매는 공간, 곧 강물 속으로 잠길 수몰지구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발길을 따라 수몰 예정지 이곳저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때로는 전쟁의 잔해처럼, 때로는 현대 설치미술처럼 보이는 철거의 폐허를 배경으로 낙후와 개발이 공존하며 일으키는 불협화음을 목격하게 한다. 이산과 파괴의 공간에서도 어수룩한 보통사람들이 보여주는 인정과 연대는 영화에 생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비관적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

16세 소녀가 처음 만나는 여주인공에게 파출부로 일할 수 있도록 외지로 데려다 달라고 할 때, ‘영웅본색’의 저우룬파(周潤發)를 흉내내며 탈출을 꿈꾸던 청년이 벽돌더미 속에서 시체로 발견될 때, 여객선의 안내방송으로 이 지역의 절경을 노래한 이태백의 시가 소개될 때, 그리고 두 주인공이 자신의 사람을 두고 돌아서야 할 때 등등. 장면마다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울림으로 가득하다.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고, 비관적이면서도 낙관적인 기묘한 영화다. 이제까지 본 중국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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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한주씨는 일간지 기자를 거쳐 미국 남가주대학(USC)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뒤 영화평론가로 일하며 동아방송예술대 초빙교수로 있습니다.

★표는 필자가 매긴 영화에 대한 평점으로 ★ 5개가 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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