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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계산된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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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흑인인 버락 오바마 미 상원의원이 지난달 28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백악관 비밀 경호팀은 내년 말 대선의 유력 후보인 그에 대한 경호를 3일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샌디에이고 로이터=뉴시스]

미국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까닭은 같은 피부색을 지닌 흑인들이 그의 편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그는 당 경선 구도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2파전으로 쉽게 압축시킬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요즘 흑인 사회를 겨냥해 종종 쓴소리를 하고 있다.

흑인인 오바마는 3월 앨라배마주 셀마의 브라운 교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곳은 42년 전인 1965년 흑인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며 행진을 시작한 장소다. 당시 백인 경찰은 '피의 일요일'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흑인 시위를 진압했다.

오바마는 이곳에서 "만일 '사촌 푸키(Cousin Pookie)'가 투표를 한다면 정치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촌 푸키'라는 말엔 게으름뱅이 흑인이라는 등의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피를 흘렸으면서도 선거 때가 되면 투표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흑인의 문제를 '사촌 푸키'라는 말로 꼬집은 것이다.

오바마가 이런 자극적인 표현을 쓰자 일부 흑인층에선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오바마는 한발 더 나갔다. 그는 흑인의 전유물인 대중음악 랩을 비판했다. "가사에 욕설이 담겨 있는 등 품격이 없다"고 했다. 흑인 학생 중 성적이 좋은 아이를 같은 흑인 학생이 '백인처럼 논다'며 놀리는 풍토에 대해서도 그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워싱턴 포스트(WP)는 3일 "오바마가 흑인 사회의 반(反)지성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며 "그가 자신이 속한 사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건 특이한 정치 방식"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묻는 WP 기자에게 "흑인의 문제들을 터놓고 드러내려는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백인처럼 논다'는 표현은 자신이 자란 시카고 남부의 이발소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라고 소개했다.

WP는 오바마의 쓴소리가 흑인 지도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흑인 인권운동가 알 샤프톤 목사는 "랩에 대한 오바마의 지적이 옳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여러 차례 "오바마는 과대포장돼 있다"고 비판했던 인물이다.

오바마의 태도는 중도적인 백인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흑인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92년 대선 때 백인 부동층을 공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흑인과 거리를 뒀던 전략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흑인 사회의 문제를 들춰낼 수 있는 것은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라고 그를 가르쳤던 찰스 오글레트리 하버드대 법대 교수는 말했다. 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주자 중)어느 누구도 흑인 사회를 향해 오바마처럼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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