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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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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여기 두 학교가 있다. 규모는 작고 초라하지만 먹먹한 감동을 주는 학교다. 둘 다 일본의 '조선 학교'다. 동포들이 다니고 '민족교육'을 한다. 이념으로는 총련계, 친북성향이지만 그것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북한.일본으로 국적이 제각각인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고향은 남북 모두"라고 말한다.

하나는 김명준 감독의 영화 '우리 학교'에 나온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또 다른 하나는 지난달 29일 SBS TV 'SBS스페셜'에 소개된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다. 두 작품 모두 세상 때라곤 모르는 원초적 천진함을 간직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울렸다.

'우리 학교'는 김 감독이 3년간 학교에서 함께 생활한 기록이다. 개봉 한 달 만에 3만5000명이 관람해 독립 다큐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미디어센터나 지역공동체를 찾아가는 '지역상영회' 요청이 8월까지 밀렸다. 입소문은 국경을 넘었다. 미국 동포들은 감독을 초청했고, 일본에서는 이달 중 상영회가 시작된다.

'SBS스페셜' 방영 이후 '조선학교 지원 모금'활동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와 학교 부지 소송에서 가까스로 이긴 학교가 6월까지 1억7000만 엔(약 14억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학교는 우리에게 잊고 있던 공동체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출연자들은 "학교야말로 민족사회의 중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징용 등으로 끌려온 1세대는 버려진 땅을 일구어 학교를 세웠고, 그들의 자손은 학생과 교사가 됐다. 집이 멀어 기숙하는 초등생들은 교사와 한 방에서 잔다. 이들에게 학교는 가족이자 생활공동체인 것이다.

말끝마다 '민족' '조선사람'을 내세우니 탈민족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조차 유일한 일본인 교사의 말 앞에 무력해진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 축구를 해 왔다. 이 학교를 처음 알았을 때, 나 아닌 남을 위해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축구선수 출신인 그가 조선학교 체육교사가 된 이유다.

'우리 학교'의 엔딩은 졸업식이다. 온통 눈물바다다. 졸업생은 "조교는 우리의 영원한 모교"라고 울먹거린다. 스승의 마지막 말도 똑같다. "앞으로 세상 일이 힘들 때마다 학교를 기억하라. 학교는 너희들의 영원한 모교다."

세상사에 치일 때마다 위로받을 수 있는 고향 같은 학교. 그 안에서 해맑게 해방된 아이들. 어쩌면 그들 인생의 최고 축복은 학교였다.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학교가 있는가.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