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도에 종군위안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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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제가 2차 대전 당시 부산영도에서 종군위안소를 설치했던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7일 오후2시 서울 태평로1가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희생자증언을 듣는 모임」에 증인으로 참석한 윤 모씨(65·여·경남울산시)는 『16세 때인 1943년9월 부산영도에 있는 「제1위안소」로 끌려가 해방 전까지 일본군인들을 위한 위안부로 있었다』면서 『당시 이 위안소에는 45명의 조선인 여자들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난 2월초 「정신대」문제가 국민들의 이목을 끈 이후 관련자들의 증언이 잇따랐으나 일제당시 국내에 설치됐던 일본군 위안소에서의 위안부생활을 증언한 것은 윤씨가 처음이다.
윤씨는 『부산에 있는 군복제조공장인 「서촌피복」에서 일하던 1943년9월 어느날 저녁 6시쯤 공장일을 마치고 부산진역 앞길을 지나던 중 순사(경찰관)가 오라고 해 무심코 따라갔다가 정신대로 끌려가게 됐다』면서 『당시 2명의 헌병이 나를 포함해 5명의 소녀를 군 지프에 태우고 영도에 있는 창고로 데려갔으며 먼저 와있던 5명까지 모두 10명이 하루 밤 동안 창고에 갇혀있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다음날 50여명의 소녀들과 함께 배편으로 일본 나고야로 끌려갔으며 이들 50명이 4개조로 나뉘어져 자신은 10명과 함께 영도로 되돌아와 「제1위안소」로 가게됐다고 밝혔다.
윤씨는 『당시 위안소에서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자주 구타도 당했다』고 폭로하고 『견디다 못해 보름정도 지난 후 도망치려다 보초에게 붙잡혀 총부리로 엉덩이를 세 차례나 맞아 피를 토하고 쓰러졌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어 『당시 영도의 위안소에 있던 45명의 조선인 위안부들은 하루평균 30∼40명 정도의 일본군인들을 상대했으며 배가 들어올 때는 50명을 상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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