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빚(정치와 돈:100·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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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조금 더 쓰면 당선”대부분 「자기 최면」걸려/지출계획 막판깨지기 일쑤/주간연재
선거란 눈에 보이지 않는 민심에 승부를 거는 투기와 같아 승자와 패자의 갈림길은 비정하다.
승자에게는 번쩍이는 금배지와 가시적인 수입(세비 월평균 4백만원 내외)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수익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패자에게 남는 것은 다시 4년간 마음을 할퀼 패배감과 가산을 정리해 갚아야할 선거빚 뿐이다.
선거빚은 남이 알기 어렵다. 실제로 돈을 많이 써 빚을 지고 있더라도 「돈 많이 써 빚졌다」고 내놓고 말하다간 금권선거란 비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빚이 없다」고 자랑할 수도 더더욱 없다. 「빚이 많다」고 했을 때보다 빚독촉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은근히 「빚이 많아 지금 당장 갚을 수 없다」고 소문나기를 바랄뿐이다.
선거빚은 막판에 쌓인다. 초반에 예산을 정해놓고 계획한 만큼만 쓰다가도 막바지에 가까워지면 후보들은 몸이 달아오를 수 밖에 없다. 도박을 할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후보들은 대부분 「조금만 더 쓰면 꼭 이긴다」는 자기최면에 걸려들기 때문이다.
『선거 안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막판에 몰리면 한쪽 팔이라도 잘라 팔고 싶은 심정이에요. 돈 안쓰면 내표가 적진으로 몰려가는게 눈에 보이는데…. 사람 참 환장하게 만들지.』
20여년간 정치를 하며 네번째 당선된 야당 중진의원의 고백이다. 애초에 포기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빚을 지지 않을 수 없음이 역력하다.
선거빚의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여당이냐 야당이냐,야당중에도 민주당이냐 국민당이냐에 따라 다르다.
그래도 형편이 나은 것은 여당후보다. 경남지역의 K의원은 『여당압승이 예상되던 지역이라 안쓴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나도 모르게 6억원을 썼어요. 2억원 초과된 거죠』라고 털어놓는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3선의 관록을 쌓은데다가 여당의원으로 당선됐기에 빚독촉은 거의 받지않는다고 한다.
경남지역 초선인 P의원은 홍보비와 조직관리비는 물론 사무실 운영비까지 그때 그때 자기주머니에서 꺼내 빈틈없이 지출했는데도 불구하고 8천만원이라는 적지않은 빚을 지게되었다고 한다. 내부단속이 소홀한 탓인지 사무장이나 친인척 등 가까운 운동원들이 나름대로 선거운동을 하면서 마구 쓴 청구서들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의외로 재선의원들이 많은 빚을 졌다. 첫 출전이거나,재출전이거나 현역의원이 아닌 민주당 후보에게는 손벌리는 사람이 적다. 어차피 돈 없는 사정을 아는 운동원들도 자원봉사 하는 기분으로 일해준다. 하지만 재선일 경우 『초선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에는 맨입으로 할 수 없지 않느냐』며 반응이 달라진다. 자연히 운동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최소한의 회식은 마련해야 하며,그러다 보면 자연히 유권자들의 손도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속앓이가 심한 것은 국민당 후보들이다. 공천 당시 잘못알려진 20억∼30억원 지원설 때문이다. 재벌이라고 기대가 컸던 국민당 후보들은 당초 판을 크게 벌였다. 선거운동이란 소수정예로 시작,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조직을 확대해 가는 것인데 일찌감치 돈에 맞춰 조직을 크게했다. 불가피하게 조직은 커져가는데 중앙당의 지원을 일부 전략지역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막판에 뚝끊어져버렸다. 그때까지 지원된 액수는 법정선거비용 1억원 내외에다 창당지원비 3천만원과 특별추가비 등 모두 2억∼3억원선이었다. 소문의 10분의 1이다. 소문은 일반의 막연한 추측일 가능성이 높지만 국민당에서 인재를 모으기 위해 일부러 퍼뜨렸다는 얘기도 있다.<오병상기자>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정치와 돈의 이면을 파헤체 정치와 돈의 양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90년 3월25일부터 일요판에 연재되기 시작한 『정치와 돈』은 7일 「선거빚」으로 1백회를 기록하고 끝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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