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충일(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강을 굽어보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모두 16만1천8백여위의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공산침략자를 무찌르다가 청춘을 바친 병사이거나,조국을 침탈한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거나,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들.
그들 가운데는 생시에 품은 큰 뜻을 활짝 펴 결실을 본 이도 있고,가슴에 못다한 한을 품고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모두 한 곳에 묻혀 말이 없다. 저마다 크고 작은 묘비를 간직한 채.
묘비는 어느 것이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경건하게 옷자락을 여미게 한다. 그 묘비는 모두 우리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생명의 스러짐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6일은 현충일. 이른 아침부터 구슬픈 진혼나팔이 울려퍼지는 국립묘지를 찾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있다. 앞서 간 아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짓는 늙은 부모들,어린 자녀의 손목을 잡고 먼저 간 남편의 묘비앞에 꿇어앉아 흐느끼는 소복한 여인네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절로 고개 숙여 명복을 비는 마음이 된다.
그런데 지금 국립묘지에는 현충일에도 정다운 꽃 한송이 없는 외로운 무연고자 묘지가 80%나 된다고 한다. 대부분 전사 당시 미혼이라 그동안 묘를 돌봐 오던 부모·형제들이 타계했거나 거동이 어려워져 점차 발길을 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립묘지관리소는 사회단체와 묘역별 결연으로 이들의 외로운 넋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그 영령들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가시 덤불이건 조약돌밭이건/서러울리 없다/네가 쓰러진 곳은 바로 네가 자라나며 사랑하던 조국…/장렬을 따르는 호곡이 없더라도/벅찬 보람을 안고 푸른 하늘아래 누운 너를/어찌타 석문마냥 드리운 침묵이라 하랴.』(이인석의 시 「무명 전사자에게」중의 한구절).
그들은 조국을 위해 죽어갔다는 것만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길이 남는다. 아니 남아야 한다. 현충일은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순간이 되어야 한다.<손기상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