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굽어보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모두 16만1천8백여위의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공산침략자를 무찌르다가 청춘을 바친 병사이거나,조국을 침탈한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거나,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들.
그들 가운데는 생시에 품은 큰 뜻을 활짝 펴 결실을 본 이도 있고,가슴에 못다한 한을 품고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모두 한 곳에 묻혀 말이 없다. 저마다 크고 작은 묘비를 간직한 채.
묘비는 어느 것이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경건하게 옷자락을 여미게 한다. 그 묘비는 모두 우리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생명의 스러짐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6일은 현충일. 이른 아침부터 구슬픈 진혼나팔이 울려퍼지는 국립묘지를 찾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있다. 앞서 간 아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짓는 늙은 부모들,어린 자녀의 손목을 잡고 먼저 간 남편의 묘비앞에 꿇어앉아 흐느끼는 소복한 여인네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절로 고개 숙여 명복을 비는 마음이 된다.
그런데 지금 국립묘지에는 현충일에도 정다운 꽃 한송이 없는 외로운 무연고자 묘지가 80%나 된다고 한다. 대부분 전사 당시 미혼이라 그동안 묘를 돌봐 오던 부모·형제들이 타계했거나 거동이 어려워져 점차 발길을 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립묘지관리소는 사회단체와 묘역별 결연으로 이들의 외로운 넋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그 영령들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가시 덤불이건 조약돌밭이건/서러울리 없다/네가 쓰러진 곳은 바로 네가 자라나며 사랑하던 조국…/장렬을 따르는 호곡이 없더라도/벅찬 보람을 안고 푸른 하늘아래 누운 너를/어찌타 석문마냥 드리운 침묵이라 하랴.』(이인석의 시 「무명 전사자에게」중의 한구절).
그들은 조국을 위해 죽어갔다는 것만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길이 남는다. 아니 남아야 한다. 현충일은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순간이 되어야 한다.<손기상논설위원>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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