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대표 압수수색에 한나라 "철저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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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제1야당의 대표 신분이면서도 검찰이 2일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봐야 했다.

검찰은 사건 수사가 강 대표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이번 압수수색으로 강 대표의 체면이 깎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예전 같았으면 야당이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했을 법한 사안이다. 하지만 나경원 대변인은 3일 "검찰이 모든 의혹에 대해서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해야할 것"이라고만 짧게 코멘트했다.

4.25 재.보선 와중에 터진 '과태료 대납 사건'에 강 대표의 측근이 연루돼 있는 데다 당내에선 이 사건이 선거 참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강 대표는 할 말이 있어도 참아야 할 처지다. 그는 ▶이번 사건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일이며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결과를 내놓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강 대표의 한 측근은 "엄밀히 따지면 대표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게 아니라 사무국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이라며 "강 대표는 과태료 대납건을 보고받은 적이 결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재.보선 패배의 상처를 딛고 당 쇄신을 강력히 추진해야 할 강 대표 입장에선 검찰 수사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에서도 강 대표를 비난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서혜석 대변인은 논평에서 "부패의 중심에 있는 강 대표가 당 쇄신을 주장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라며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만큼 강 대표는 대납 자금의 출처와 성격이 밝혀지기 전에 스스로 진상을 고백하고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선병렬 과태료 대납사건 진상조사단장도 "강 대표가 한나라당 쇄신의 책임자로 둔갑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며 "강 대표는 대납사건 의혹을 스스로 밝히고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태료 대납사건뿐 아니라 복잡한 당내 사정도 강 대표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응급처방으로 당 분열을 미봉하는 데는 성공했지만'빅2'(이명박.박근혜)의 충돌이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른다. 이재오 최고위원을 비롯,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했던 의원들이 앞으로 강 대표 말에 순순히 따를지도 의문이다.

한 중진의원은 "강 대표는 대표임기(2008년 6월)를 채워 내년 4월 총선 때 공천권을 행사하고 싶겠지만 향후 몇 달간 계속 고조될 '빅2'의 갈등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면 대표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4일 오후 염창동 당사에서 열리는 '빅2' 간담회는 강 대표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자리에서 강 대표는 양 주자의 화합을 호소하는 한편 앞으로 의원 줄 세우기나 근거 없는 음해.비방이 적발되면 당사자는 물론 각 주자에게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홀로서기 시도다.

하지만 당내에선 비판적 전망도 나온다. 1988년 정치에 입문한 이후 계속 주류의 길을 걸어오면서 실력자와 충돌하기보다는 권력 핵심에 동화되는 성향을 보였던 강 대표가 과연'빅2'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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