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자 탐구… 용전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쓰는 태평형 YS/돈 만큼은 직접관리… 유사시 대비형 DJ/이익 있는 곳에만 투자하는 기업형 CY/세사람 모두 넉넉하지만 생활은 검소/두 김씨 재산 10∼20억원대·정 후보 3조원 추산/YS 돈줄은 대기업,DJ는 주로 중소기업 기대
사람들의 돈버는 방식과 쓰는 스타일에는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함께 배어있다. 대권도전 3인의 「돈문제」는 대단히 비밀스러운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지만 그들의 감추어진 인간성,혹은 행동방식을 밝힐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3자 모두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영삼민자당대통령후보의 상도동집은 24년이 됐으나 특별한 수리를 하지 않아 최근 앞마당을 파고 냄새나는 정화조공사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김대중민주당대통령후보도 20여년이상 낡은 국민주택에 살다가 86년에야 집을 헐고 새로 지었으나 보통 잘사는집 규모 정도다.
정주영국민당후보도 쓸 일이 아닐때는 자린고비의 노랭이다. 3·24총선 유세과정에서 한 여성당원은 정 후보 양복바지 무릎부분에 짜깁기흔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들이 돈이 부족해서 검소한 것은 물론 아니다. 늘 국민의 눈을 의식해야 하거나 직접 돈을 벌다보니 화려하거나 귀족적인 소비행태와는 저절로 멀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활동에서의 돈씀씀이는 각자의 성격에 따라 모두 다르다. 김영삼씨는 보통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쓰고 마는」 스타일이다. 또 돈이 없어도 도무지 걱정하는 빛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 만큼 계산적이지 못하다. 87년 대통령선거 막바지 충남 서산에서 지지자 수백여명을 모아놓고 점심식사를 했는데 돈이 다 떨어졌다. 갈비탕 값 2백만원이 없어 처음 들어간 그 식당에서 외상을 그었다.
그쯤해서 돈줄이 바닥 나자 김 후보는 5천만원 상당의 서울 컨트리클럽 회원권을 팔아야 했다.
이같이 꼼꼼하지 못한 돈쓰기 방식은 그가 어장주인 부유한 아버지(김홍조옹·82) 아들로 태어나 돈의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한데서 생긴 습관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70년대 초반까지도 정치자금의 상당부분을 부친의 지원에서 충당했다.
그는 68년 상도동 현재의 집에 안착하기까지 선거자금 등을 위해 부친이 사준 4채의 집을 차례로 팔았다고 한다. 평생을 단 한번도 사업을 하거나 월급을 아껴 「돈버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한국 정치인의 모습이다. 그에게 있어 돈은 거쳐가는 정거장이나 다름없다.
김대중민주당후보는 어린시절 소작농의 4남2녀중 차남으로 태어나 당시의 보통사람들처럼 매우 어렵게 생활했다. 젊은 시절 목포일보·흥국해운사장 등을 하면서 남다른 사업수완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그는 50년대 네번에 걸친 국회의원선거에서 떨어진 10여년간이 가장 「비참했던 시기」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배를 곯아본 일이 적지않았던 그는 20대 여동생이 돈이 없어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김 후보는 이같은 가난속에서 정치 뒷바라지로 고생한 첫 부인과 사별했다. 그리고 그에겐 늘 약점을 들추어 내려는 탄압이 따랐다.
그런 가난과 가혹한 탄압속에 정치를 해서인지 그는 중요한 돈관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철저히 자기가 한다.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장남 홍일씨가 상당부분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계산 같은 것도 비서진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지갑에서 돈을 빼 계산하곤 했다. 심지어 87년 대선때 유세다니면서 고속도로 통행료를 스스로 지불하는 일이 기자들에게 목도되기도 했을 정도다.
김대중후보는 항상 어려운 시기를 대비해 돈을 비축하는 형이다. 「사당」이나 다름없는 야당을 운영하며서도 당의 돈과 자신의 돈을 철저히 구분해 「자기것」을 언제나 따로 챙긴다고 한다. 그래서 총선이나 대통령선거를 치르고도 돈이 남는 일이 많다는 지적이다. 당 금고는 바닥이 나도 김 후보는 언제나 일단 유사시 재기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다.
87년 대선을 거치고 88년 제1야당으로 부상한후 김 총재(당시 평민당)가 증권시장을 방문하는 등 증시부양책에 관심을 보였을 때 시중에서는 김 총재가 「잔여분 자금」의 증식에 나섰다는 소문이 나돈적이 있다.
재벌 정주영후보는 이익이 있는 곳에만 돈을 쓰는 기업형이다. 평생 밑지는 장사를 한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 그의 자랑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때도 당선가능한 곳에는 「깜짝 놀랄정도」로 자금을 지원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저렇게 짤줄 몰랐다』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정 후보는 지난 총선때 별볼일 없는 자기당 후보보다 오히려 무소속의 당선가능성이 높은 인사에게 「거액 선매금」을 건네주는 「투자」를 했다. 이 돈에 코가 꿰인 일부 무소속 의원들이 지금 진로설정에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민당 당료들에게도 민자당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의 급여를 주지만 근무시간은 1.5배 이상이다. 일의 강도는 높고 모든 보고서는 반드시 앞뒷면을 다 사용해야 하는 등 근검절약을 따라야 한다.
정 후보는 평소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정치가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고 남의 돈을 긁어 모아 살아가는 기생집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권도전 3인의 재산도 크게 차이가 난다. 정 후보의 재산은 자신도 따져보기 어려울 정도로 천문학적인 규모이고 두 김씨들은 최소한 10억대 이상이다.
김영삼후보의 부동산은 서울 상도동 대지 1백2평에 건평 85평의 2층짜리 양옥이다. 시가 약 4억원. 고향 거제도에는 김 후보 명의로 돼 있는 1만1천평의 전답과 2만6천평의 임야가 있으며 거창에는 어장막터(멸리 말리는 곳) 1천여평이 있다. 김 후보측에 따르면 약 10억원 정도라고 한다.
이밖에 1억원 상당의 정치망 어업권을 갖고 있고 부인 손명순여사 소유의 46t짜리 철선 1척(5천만원)도 있다. 김 후보의 것이나 다름없는 부친 소유의 어선도 6척이 있다. 이런 저런 것 등을 합치면 그의 부동산 재산은 약 20억원 정도다.
김대중후보도 서울 동교동에 대지 1백53평,건평 45평짜리 단측양옥집과 2층 별채 20평이 6억5천만원 가량이다. 경기도 화성군에는 1억원에 상당하는 임야 9백평이 있다. 부인 이희호여사 명의로 돼있는 것은 서울 영등포동의 공장대지 1백2평인데 월 2백만원에 세를 주고 있다. 이밖에 그림·서화류의 값나가는 예술품이 30여점 있다. 이래저래 합쳐 최소한 약 10억대 재산가인 셈이다.
정 후보는 개인 소유 재산만 3조원 가량으로 추산되며 정치를 하기 위해 5천∼8천억의 현금을 확보해 놓았다고 한다.
지난 총선때 사용한 자금의 수표가 대부분 90,91년 발행된 것이어서 여러사람을 놀라게 했다. 재산중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비린 것도 많다. 인왕산 산자락 황금위치에 자리한 청운동 2백50평 대지에 1백평 2층 양옥집은 30억원을 호가한다.
정 후보가 모든 선거자금을 자신의 알짜배기 생돈에서 써야 한다면 두 김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로부터 지원받아야 한다. 김영삼후보는 여권으로 변신함으로써 돈줄에 유리하지만 오랜 의정활동 과정에서 사귀어둔 대기업들과의 평소 관계 덕을 볼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김대중후보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로부터 자금지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편이다. 또한 소속의원과 돈많은 예비정치인들로부터 「소액 다수」의 자금염출을 기대하고 있다.
두 김씨 주변에서 두 김씨를 평하는 재미있는 기준이 있다. 김영삼씨 측근들은 김영삼씨 주머니에 정치자금이 들어오면 금방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나 김대중씨 측근들은 전혀 그런 낌새를 못느낀다는 얘기다. 양 김씨의 성격차이가 이 대목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전영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