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영식 당운영 불만누적/「무더기탈당설」 국민당 속앓이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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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당선자를 직원 다루듯” 정 대표 독선 거부감/체질 근본개선 않는한 대선체제 진통 클듯
지난 총선에서 의외의 돌풍을 일으킬때까지 순항해온 국민당이 대선체제 출범을 앞두고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국민당 당선자 일부가 정작 정주영국민당대통령후보가 맹활약해주길 바라고 있는 대선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당을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탈당을 밝힌 당선자는 없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미 6∼8명에 대한 탈당설이 나돌아 당 수뇌부는 『근거없는 음해』라고 강력히 부인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이들을 붙잡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장 확실한 탈당예상자는 전국구로 당선한 조윤형최고위원이다. 조 최고위원은 이미 총선이후부터 당무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고 지난 21일 김영삼민자당대표와 비밀회동한 이후 민자당입당설이 본격화되었으며 지난 25일에는 보좌관을 통해 최고위원직 사퇴서 제출을 시도했다.
조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일부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김대중민주당후보의 집권을 막기위한 범보수세력의 결집이라는 차원에서 민자당에 입당할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탈당에 이은 민자당 입당을 예고했다.
창당 공신으로 총선당시 정 대표를 그림자같이 따라다니며 정치조언을 해왔던 양순직고문도 탈당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양 고문은 『이미 떠나온 민주당으로 돌아가지 않겠으며,민자당 입당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고 부인했지만 『당 운영이 기성정치인들과 맞지않은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으며,당체질개선을 여러차례 건의했으나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망을 느끼고 있다』는 말로 국민당으로부터의 정이 떠나고 있음을 시인했다.
김영삼후보계로 정치생활을 해왔던 박희부(충남 연기)·김찬우(경북 청송­영덕) 당선자도 끊임없이 민자당 입당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 『나를 버린 사람에게 돌아가겠느냐』라며 아직은 극구 부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여러차례 직·간접의 민자당 입당권유가 있었으며,당사자들도 『그쪽과의 인간관계까지 끊어진 것은 아닌만큼 몇사람 만난 적은 있다』고 접촉사실 자체를 시인하고 있다.
이밖에 JP계였다가 공천탈락,국민당으로 나섰던 송영진당선자(충남 당진)역시 민자당 입당권유를 받고 거의 심경을 굳힌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당의 푸대접을 불평해온 정주일당선자도 그간의 행적 등으로 미루어 탈당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또 윤항렬(경기 광명)·이호정(수원 장안) 당선자도 구 민정계 정서를 바탕으로 탈당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개원을 앞두고 국민당이 이같은 시련을 맞은 것은 기본적으로 「정주영당」 「현대당」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창당과 함께 국민당은 현대출신과 정당인 출신간에 화합하기 힘든 이질감을 안고 태어났으며,기업가 정주영의 정치가로의 변신이라는 지난한 숙제를 짊어지고 출발했다. 하지만 총선과정에서 이같은 이질감과 변신의 미흡함은 국회의원후보 개인들의 앞뒤 돌아볼새 없는 선거운동 와중에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선후 정 대표와 당선자들은 내부에서 맞부닥치면서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적 모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문 정치인들인 당선자들과 지구당위원장들은 대부분 정 대표의 독단적인 당운영 스타일,곧 현대식 밀어붙이기정책에 거부감을 보여왔다. 거의 모든 당무 결정이 이미 정 대표와 그의 수족인 현대출신 당료에 의해 내정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논의되며 자신들은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돼왔다는 불만이다.
뿐만 아니라 정 대표가 당선자들을 현대직원 다루듯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지시하고 심지어는 아무 통보없이 책상을 치워버리는 식(양순직)으로 행동해 당선자들로 하여금 심한 인간적 모욕감을 느끼게 한 적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당선자들은 정 대표가 의정활동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지원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전혀 그럴 기미를 못느껴 불만이 고조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정 대표와 현대출신 당직자들도 이같은 불만과 비판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당선자 전원의 당무위원 임명 ▲지구당 운영비 월 6백만원 지원 ▲정 대표와 최고위원·고문간의 주례간담회 등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근본 문제인 정치인 출신과 현대출신간의 이질감은 여전하며,정 대표 자신의 변신도 미흡하다는 것이 당선자들의 지적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현대그룹사원으로 확신하고 있는 사무처요원들을 대폭 물갈이하지 않는한 이질감은 여전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 대표 역시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을 돈주고 부리는 직원쯤으로 생각하는」 기본적 관점이 바뀌지 않은채 상당히 표피적인 변신에 그치고 있다는 평이다.
이밖에 정 대표의 아들인 정몽준 의원과 현대출신 당료들과의 알력·마찰도 문제다. 정 의원은 ▲정 대표의 이병규비서실장이 자신을 제치고 국민당 입장을 대외적으로 대변하며 ▲정 대표가 자신에겐 알리지 않은 사항을 이 실장에게 털어놓는 일도 발생하자 「이 실장 격리 작전」에 나서 그를 정 대표특보로 밀어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출신 당료들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어 정 대표의 대선전략에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의 공식 입장이나 정 대표 개인의 생각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당선자 다수의 이같은 평가가 지속되는한 국민당의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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