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뿌리깊어 태 민주화“산너머 산”/개헌안 4개항 통과후의 정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수친다 볼모 군 기득권유지 시위/발포 명령자 처벌 여부 전기될 듯
수친다 크라프라윤총리의 사임과 개헌에도 불구,태국의 진정한 문민화에는 아직도 넘어야할 장애물이 적지않다.
태국의회는 25일 상하 양원합동회의를 열어 4개항의 개헌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내달 10일 최종표결을 남겨둔 이번 개헌안의 핵심은 ▲민선의원만이 총리에 취임할 수 있도록 하고 ▲군의 지배를 받는 상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 군부의 정치개입 차단에 있다.
그러나 태국의 군지배구조는 너무나 폭넓고 뿌리깊다.
이번 유혈사태를 겪고나서도 태국 군부는 대체로 흔들리지 않고있다.
지난 21일 태국군 대변인은 『정치인들이 잘못을 저지를때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언제나 군인들이 바로잡을 것』이라는 발언을 서슴지않았다.
망명했던 것으로 알려진 수친다총리도 발포명령자 등에 대한 총사면령의 국회통과를 기다리기 위해 군부지도자들의 보호아래 태국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비록 대세에 밀려 수친다총리는 물러났지만 현군부의 기득권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시위며 여의치않을 때 군부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풀이되고 있다.
따라서 수친다총리가 물러나고 개헌이 이루어져도 사람이 바뀔지언정 군지배구조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태국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이번 유혈시위사태는 군에 대한 중산층의 이반협상이 분명해진만큼 사회전반의 반군 움직임이 점차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태국 군인은행은 25일 전체고객의 73%를 차지하는 일반 시민들이 줄줄이 거래를 중단하자 은행이름에서 「군인」을 사용치 않기로 했다.
더구나 그동안의 언론통제가 풀려 이날부터 유혈진압의 모습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방송되면서 국민들의 대군감정이 악화,군자체도 당분간 외출을 삼가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정치분석가들은 그럼에도 진정한 문민화는 앞으로 10년이 걸릴지,50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고 자체분석하고 있다.
태국의 문화는 사회정의나 잘못된 것에 대한 징벌을 중시하지 않고 체면을 세워주는 타협을 더 높이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풍토는 쿠데타를 기도했다 실패했던 군인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않고 승진,또 다시 쿠데타를 도모하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은 군부의 급속몰락을 예견하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이번 대규모 유혈사태가 태국국민의 타협중지정서의 재적용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5일 개헌을 심의한 국회의사당주변에 몰려든 시위대 3천여명은 『살인자들이 숨을 곳은 없다』『그들은 법정에 세워지고 처형돼야 한다』고 외쳤다. 잠롱 스리무앙 팔랑탐당 전 당수와 차왈리트 용차이유드신희망당당수 등 야당지도자들은 발포명령자에 대한 총사면령의 국회통과저지 혹은 무효화투쟁을 다짐했다. 이번 유혈시위사태로 정치적 정당성이 뿌리째 뽑힌 것이나 다름없는 집권 5개당 연합체가 야당의 그같은 주장을 전면 묵살하기도 어려울 것이라 보인다.
따라서 발포명령자에 대한 처벌 여부의 문제는 앞으로 태국의 주요정치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집권 5개 당연합체의 분열과 새로운 연립정부의 탄생,혹은 보다 빠른 군지배구조의 탈피를 낳을 촉매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이재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