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 하려는데 교수가 폐강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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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에 이어 정운찬까지….

범여권이 또 한번 휘청거렸다. 한나라당 내부 갈등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여권은 30일 발등에 떨어진 정운찬 불출마 폭탄에 갈 길을 잃어버렸다. 정 전 총장은 범여권의 희망이었다. 열린우리당이건 탈당파건 민주당이건 '정운찬'을 뺀 대선 구도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빨리 대선 출마를 선언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때에 정 전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범여권은 망연자실했다.

30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左)이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대선 불출마 결심을 밝히고 있다. 그는 범여권에서 한나라당에 대항할 적임자로 꼽히던 유력 대선 주자였다. 마땅한 주자가 없어 고민하던 범여권에는 충격이다. 한때 지지율 1위를 달렸던 고건 전 총리(右)는 1월 16일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연지동 여전도회관에서 전격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었다.강정현 기자

◆ "책상물림의 한계"=통합신당모임의 전병헌 의원은 "허…참…"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의 첫 반응이 이와 같았다. 각 정파들은 "안타깝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사석에선 비판도 쏟아졌다.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은 "(줄곧 교수로만 있었던) 책상물림의 한계"라고 말했다. 같은 당 김부겸 의원은 "(대선) 구도가 무너져 버렸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재선 의원 두 명은 "참 싱거운 사람" "몇 번 만나봤는데 위태위태하더라, 펄밭을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김한길(통합신당모임)의원은 "현실의 벽을 상당히 낮춰드려도 그게 높아 보인 모양"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문병호 의장 비서실장은 "지난주부터 정 전 총장의 불출마설이 유포돼 일정부분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충격은 충격"이라고 말했다. "수강 신청을 하려는데 교수가 폐강을 결정해 버린 격"이라고 말하는 의원도 있었다. 익명의 또 다른 의원은 "(여권 후보 경선이) 이제 몇 남은 후보들끼리의 '도토리 키 재기'가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 발 빨라진 친노 세력= 정 전 총장의 퇴장으로 '후보 중심의 제3지대 신당론'은 힘이 빠졌다. 통합 작업도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외부 인사의 영입으로 참신성을 높이려던 기존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친노 세력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측근들이 주축인 '참여정부 평가 포럼'이 지난달 27일 출범한 데 이어 30일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는 "5월 중 대선 출마를 선언하겠다"며 "(여권 후보들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진한 정책이 다 옳았다는 긍정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친노파인 김혁규 의원도 5월 말께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

◆ 여야 대선 주자 반응=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갑작스럽다. 좋은 학자라고 생각했는데 정치판이 만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근혜 전 대표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정 전 총장이 결국 정치 신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과의 연대를 모색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잠재력을 가진 분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은 "국민적 기대를 받아온 정 전 총장이 함께하지 못하게 돼 매우 안타깝다" "평화 개혁의 전망이 천 길 낭떠러지 위에 걸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정욱.정강현 기자 <jwki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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