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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임기 내 北核 폐기 가능성 1%도 안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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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0면

美 국제정치 석학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에서 합의한 북한 비핵화 초기 조치 이행이 주춤거리고 있다. 외견상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북한 돈의 처리 지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펼쳐질까.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최선의 방책은 무엇일까. 미국의 대표적 안보정책 전문가인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ㆍ67) 하버드대 교수를 만나 북핵 문제와 핵 테러리즘에 관해 들어보았다. 앨리슨 교수는 저서 『핵 테러리즘(Nuclear Terrorism)』의 한국어판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26~28일 방한했다. 대담은 27일 이 책 번역자인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이 맡았다.

INTERVIEW 美 국제정치 석학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6자회담 2ㆍ13 합의를 비롯해 북핵 문제에서 여러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대북정책을 전환해 양자대화에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ㆍ미 양국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변신을 좁아진 정치적 입지에서 찾는 시각도 있는데.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로 부시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지나치게 양보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 1기 동안 미국은 북한에 당근도 채찍도 제시하지 않는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이것이 북한 핵실험을 불렀다. 미국의 달라진 대북 자세는 과거의 실패한(failed) 정책, 네오콘(신보수주의) 이념에 도취된(drunken) 정책이 온전하고(sober) 의미 있는(sensible) 정책으로 바뀌고 있음을 뜻 한다.”

-미국의 대북 접근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인가. 아니면 미국 내부에서의 반대로 조정기를 맞을 수도 있나.

“미국의 대북 접근은 네오콘 이념에 대한 전통적 실용주의 외교(traditional pragmatic diplomacy)의 승리를 대변하며, 이 방식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길고 힘든 여정이다. 우선은 핵무기와 플루토늄의 추가 생산을 동결하고 비핵화와 북한의 개방과 변화는 그 다음 단계에서 추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 길을 가려 하고 있다.”

-2ㆍ13 합의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축배를 들 시간은 아니다. 이 합의는 적어도 네 개의 지뢰밭을 피해가야 한다. 첫째, ‘핵 폐쇄’ ‘핵 불능화’ 등에 관한 후속 합의들이 이어지지 않으면 대화는 좌초할 수 있다. 둘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재개를 위한 북한과 IAEA 간 대화는 쉽지 않다. 셋째,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넷째,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과 핵무기를 규명하는 문제도 빠져 있다.

“지적대로 지금은 시작일 뿐이다. 북한이 속이려고 하면 지뢰밭은 40개가 될 수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쁜 의도를 가졌다면 매우 영리하게 움직일 수 있다. 첫 단계는 미국ㆍ중국ㆍ한국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2ㆍ13 합의를 두고 중국에는 “시키는 대로 했으니 우리를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설득할 것이며, 미국에는 “이제 우리를 붕괴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할 것이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비핵화를 이행하는 체하면서(pretend to disarm) 다른 나라들이 믿는 체하기를(pretend to believe) 기대할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 대북 정책을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도록 만들면서 핵무기를 그대로 보유하면 북한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물론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수용하더라도 최대한 천천히 진행시킬 것이다. 부시 대통령 임기(2009년 1월) 전에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폐기할 가능성은 1%도 안 된다.”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ㆍ개방이 함께 이뤄질 때에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이 개혁ㆍ개방을 거부하면서 핵만 포기하면 체제 경직성으로 국제사회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다시 체제 수호를 위한 카드를 빼어 들 수밖에 없게 된다. 바람직한 해결책은 무엇이겠는가.

“북한의 비핵화가 개혁ㆍ개방을 동반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그나마 현재의 긍정적 변화는 미국이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위협을 동반하지 않는 유인책은 효과가 없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리비아ㆍ이란ㆍ동독 등 다른 나라 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장단점들을 비교하면서 북한에 적합한 방식을 도출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 1기에는 “우리가 단호하게 나가면 언젠가는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는 인식으로 대처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보다 실용주의적인 인사들이 들어와 새 대북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북한이 핵 폐쇄에서 핵 폐기, 국제사회 동참 수순으로 나아가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핵 포기와 개혁ㆍ개방에 대비해 풍성한 대북 지원책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북한이 합의를 기만ㆍ우회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에서 앨리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북한이 일정 수준의 핵 해결 제스처를 보이면서 미국으로부터 반대급부를 챙기고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보는데.

“그런 가능성에 잘 대처하는 것이 그 나라의 역량이다. 차제에 한국을 포함한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핵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북한을 비핵화하는 노력이 실패할 경우 북한이 핵 테러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빈 라덴에게 핵무기를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빈 라덴이 그 핵무기로 로스앤젤레스를 공격했다고 상정해보자. 핵무기의 출처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미국은 북한을 향해 전면 보복을 감행할 것이다. 내가 국방 당국자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핵무기 제조국에 사용처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도록 하는 핵 보증(nuclear accountability) 제도가 필요하다.”

-중국은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로 간주돼 왔고, 이번 6자회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미국은 중국에 대해 두 개의 강력한 지렛대를 갖고 있다. 첫째, 북핵 문제를 미ㆍ중 관계와 연계시킬 수 있다. 즉, 북핵 해결에 진전이 없으면 미ㆍ중 관계가 나빠진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둘째, 북핵이 장기화하면 일본ㆍ한국ㆍ대만 등이 차례로 핵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중국이 이것을 깨닫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유감이지만, 적극적 역할을 하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역할이 일정 수준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북핵은 미국과 일본, 미ㆍ일 동맹에 저항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전략적으로 본다면 중국에 북핵은 반드시 없애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좀 더 두고 보면서 즐기는 대상일 수도 있다.
“이제는 중국도 북핵을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북한의 핵무기가 중국의 분리주의자 손에 들어가면 중국을 향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중국 지도부도 이런 점을 깨달았다고 본다.”

-교수께서는 핵 테러 예방을 위해 ‘3불(不) 독트린’을 주장하고 있다. ‘허술한 핵무기 관리 불용(不容)’ ‘핵 물질 확산 불용’ ‘새로운 핵 보유국 등장 불용’이 그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3불 독트린을 얼마나 잘 실행했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실패작이다. ‘허술한 핵무기 관리 불용’의 성적은 C- 쯤이다. 세계 도처에서 핵무기와 핵 물질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문제에서 러시아가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핵 물질 확산 불용’에 대한 성적은 D이다. 핵 물질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농축과 재처리의 확산을 방지해야 하는데, 현재 농축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이란이 최대 도전이 되고 있다. ‘새로운 핵 보유국 등장 불용’의 점수는 F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와 핵 실험을 막지 못했다.”
정리=김민석·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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