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산 사람 없소?”“살았거든 대답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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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0면

장미여관도 아니고, 황실여관도 아니다. 황색(黃色)여관이다. 여관 이름 참 꿀꿀하다. 황사 바람이 눈앞을 가리는 허허벌판에 달랑 한 채 선 이 여관 앞에서 나그네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룻밤 몸을 눕힐 곳은 여기뿐. 달리 어디로 가겠는가. 극작가 이강백이 2007년 우리 사회를 은유하는 상징어는 ‘옐로 인(Yellow Inn)’이다.

황색여관 #2007 국립극단 정기공연 #이강백 작, 오태석 연출 #4월 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문의: 02-2280-4115

“거기…산 사람 없소?” 대뜸 첫마디부터 질문이 날아온다. 여관 주인은 소리 지른다. “살았거든 대답해!” 극의 시작과 마지막을 꿰뚫는 반어법.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는 혼잣말이 있다. “좆같이 조용하군.” “기가 막혀.” “미치겠군.”

황색여관에는 비싼 방과 싼 방, 두 종류 객실뿐이다. 있는 자와 없는 자, 빈부격차는 기본이다. 젊은이와 늙은이가 서로 섭섭하단다. 남녀가 서로 뜯어먹는다. ‘저쪽은 저쪽대로, 이쪽은 이쪽대로’ 해야 사는 세상이다. 여관에 든 사람들은 곧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휘말리고 다음 날 아침 살아남은 자는 없다. 여관은 떠들썩한 상가(喪家)로 변하고, 사람들은 쫓고 쫓기느라 정신이 없다. 식칼이 번득인다.

시체를 치우고 다시 새 손님을 맞는 쳇바퀴 같은 일상의 어느 날. 여관 주인은 처제와 눈이 맞아 여관을 떠나려는 주방장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아침 해가 떴을 때 단 한 명이라도 생존자가 있으면 여관을 넘겨주겠다고. 가망 없는 내기임을 알면서도 주방장과 처제는 한 번 더 속아보기로 한다. 이쯤 되면 이미 결판은 난 셈이라는 걸 눈치 빠른 관객은 알아차리지만 극은 느릿느릿 프롤로그를 지나 1막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다시 반복이다. 시시콜콜 티격태격 무대는 오태석 연출로 보기에는 좀 지루하다. 푸닥거리하듯 에너지가 태풍처럼 쏠려다니는 ‘오 도깨비’ 표 연극에서 좀 비켜나 있다. 대신 이강백 극작 특유의 정확한 대사가 아카데믹한 국립극단 배우들의 입과 몸으로 전달된다.

황색여관을 구원할 이는 누구인가. 똥고집 처제라고 작가는 지목한다. 다시 태양이 뜨고 이번에야말로 이 시체 구덩이를 떠나야겠다고 나서는 주방장 앞에서 처제는 선언한다. “난 안 가요.” 왜? “어젠 한 사람도 못 살렸어요. 두고 보세요. 오늘은 꼭 살릴 거예요.”

황색여관에 생존자가 탄생할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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