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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 사건, 민주화운동 인정은 잘못이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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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13면

“동의대 사건이 ‘민주화 운동’이라면, 숨진 경찰관들은 ‘권력의 주구’란 말입니까?”

주선회 헌법재판관 퇴임인터뷰

주선회 헌법재판관이 퇴임 하루 전인 지난 21일 오후 집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던 도중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주심을 맡았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을 임기 6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은 뒤 ‘가장 아쉬웠던 사건’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였다.

“더 독하게 쓰려고 했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1989년 5월 노동ㆍ학내 문제로 교내 시위를 하던 부산 동의대 학생들이 전투경찰 5명을 납치해 감금했고, 이들을 구출하러 경찰이 도서관에 진입하는 순간 화염병을 던져 경찰관 7명을 숨지게 했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사건에 가담한 46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결정했다. 이에 경찰관 유족들은 “무기징역 등 중형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가해자들에게 명예와 보상을 줌으로써 우리의 행복추구권과 법치주의를 누릴 권리를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2005년 10월 이 헌법소원을 5대 4로 각하했다. 다수의견은 “동의대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곧바로 순직 경찰관과 유족들이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였다. 유족들이 심적으로 혼란과 동요를 겪을 수 있으나 순직 경찰관들이 국가유공자로서 사회적 예우를 받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때 주 재판관은 소수의견을 냈다. “각하 결정으로 유족들은 ‘민주화 운동을 억압한 부당한 공권력 측 하수인의 가족’으로 격하되는 불명예를 짊어지게 됐습니다. 가해자들의 행위는 치명적 폭력을 동원한 범죄로 민주헌정질서를 후퇴시켰을 뿐입니다.”

그는 “순직 경찰관과 가해자는 동전의 앞뒷면인데 서로 법적ㆍ직접적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가슴에 전혀 와 닿지 않는 형식논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검 공안부장을 지낸 경력에서 비롯된 그의 보수 성향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스스로를 ‘중도 우파’로 규정한 주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상식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음을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4월 ‘준법서약서’ 헌법소원에선 ‘위헌’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좌익 사범의 경우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만 가석방 대상에 올리는 이 제도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검찰에 있을 때 ‘공안사범에게도 양심의 자유가 있는데 검사들이 왜 서약서를 강요하느냐’고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었다”고 회고했다.

기자가 “노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의 탄핵을 지지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졌다면 결정이 달라지지 않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래도 결론은 같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촛불시위의 영향을 받은 재판관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되고요. 주심을 맡은 뒤 ‘몸조심하시라’는 조언까지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예로 들며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의 성숙한 자세를 당부했다.

“이해가 걸린 집단은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요. 국민들도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나오게 된 배경의 논리도 따져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이성적인 토론이 이뤄져야만 법치주의가 뿌리를 내립니다.”

지난해 재판관 임명 과정에서 나온 ‘코드 인사’ 논란에는 일반론으로 답했다.
“재판관이 9명인데 보수가 7명이거나 거꾸로 진보가 7명이 되어서는 곤란해요. 결정이 어떻게 나올지 미리 알 수 있을 정도가 돼선 안 됩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법원ㆍ헌재 통합론과 관련해 주 재판관은 “정부 수립 후 40년간 헌법위원회도 해봤고, 대법원에서도 해봤지만 (헌법재판을) 제대로 한 적이 있느냐”고 일축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선 “당장은 여행도 하면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낼 것”이라고 했다.

주 재판관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 10회로 서울지검 3차장, 대검 공안부장, 청주·울산지검장, 광주고검장, 법무연수원장 등을 거쳤다. 부산지검 공안부장이던 1987년 당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대우조선 근로자 이석규씨 사망사건에 개입해 장례식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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