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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고’ ‘샘이 깊은’ 한국 잡지의 원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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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02면

한창기(1937~97)는 몰라도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기억하는 이는 많다. 1976년 3월 선보인 월간지 ‘뿌리깊은나무’는 한국 잡지사상 돌연변이요, 이단아이자, 선구자였다. 쌀을 손아귀 가득 퍼올린 주름투성이 농부의 손을 표지로 한 ‘뿌리깊은나무’ 창간호에 충격을 받은 이가 한 둘이 아니었다. 국한문 혼용이 당연하던 30년 전에 순 한글을 썼고 내려쓰기가 대세이던 그 시절에 가로쓰기만으로 잡지를 만드는 뚝심을 보여줬다. 외부 필자에게 받은 글을 뜯어고쳐 싣는 일종의 ‘불경’까지 저질렀다. 각종 외국 말에 오염된 문장을 쉽고 정확하며 한글의 맛이 살아나는 글로 고치는 한창기 대표의 고집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면 누구나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는 우리 말과 글’이 그의 잡지철학이었다. ‘한글이 우리 민중 문화의 그릇이요 기틀’이라 여긴 꿈이 잡지로 태어난 것이다.

한창기 10주기

‘뿌리깊은나무’가 일군 변혁은 이뿐이 아니다. 요즘이야 신문에까지 아트 디렉터를 두지만 당시로서는 최초로 그래픽 디자인 개념을 끌어들이고 사진 대접을 제대로 해 ‘보는 잡지’의 첫 길을 열었다. ‘뿌리깊은나무’에 잠시라도 몸을 부렸던 사람은 문법 논쟁, 시각 표현 논쟁이 끊일 새 없던 편집실을 잊지 못한다. 논쟁의 한복판에 심판처럼 앉아서 ‘정확한 것이 아름답다’를 스스로 보여주던 한창기 사장은 더더욱 잊지 못한다. 1980년 신군부가 출판물 일제 정비를 빌미로 삐딱해 보이는 잡지를 정리할 때 ‘뿌리깊은나무’는 폐간됐지만 한창기의 뿌리는 더 깊이 뻗어나갔다.『뿌리깊은나무 민중자서전』『숨어 사는 외톨박이』 같은 이 땅 토박이 민중의 삶을 채록한 책, 판소리 다섯 마당을 엮은 음반,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시리즈가 못다한 잡지의 정신을 이어갔다.

우리 문화를 옹골차게 엮어가던 그가 힘을 너무 일찍 몰아 소진했음일까. 한창기는 예순하나, 한창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올해는 그의 10주기다.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 작은 매듭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 윤구병, 2대 편집장 김형윤, ‘뿌리깊은나무’를 이은 ‘샘이깊은물’의 편집장 설호정, 아트 디렉터 이상철, 잡지 사진의 새 지평을 열었던 사진작가 강운구씨가 그들의 대장이었던 한창기를 가장 그답게 불러온다. 참으로 복잡미묘한 고인의 인생에 딱 알맞은 ‘잡지’ 형식의 추모집을 내기로 한 것이다. ‘한국적 잡지의 한 완성’을 이룬 그를 추억하는 그릇으로 잡지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말과 글, 우리 전통과 문화를 유난스럽게 사랑하고 가꾸었던 한 원칙주의자의 집념이 10년 뒤 여기 다시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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