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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경제 분석] “美 주택재고 20%… 낙관하기 힘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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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21면

전문가들은 미국 주택시장의 장기 호황이 끝나가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 어느 정도 떨어질지, 거시경제에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따라서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 속에 있는 근본적인 원인과 배경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 2000년 인터넷거품 교훈 삼아야 할 때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최근 5년 동안 미국인의 왕성한 소비지출을 가능하게 했던 가계 재산 중 상당 부분이 주택가격 하락 때문에 허공으로 사라질 운명에 빠졌다. 이는 미국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세계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돌이켜보면 미국 주택가격은 인플레이션 추세와 함께 오르내림을 반복했다. 1953~95년 중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 주택가격(중간값) 상승률은 10% 수준이었다. 연평균 0.2%의 오름세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조사 분석을 보면 19세기에도 미국의 실질 주택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96년 이후 최근까지 실질 주택가격은 10여 년간 70%나 올랐다. 이전 데이터와 비교해 보면 엄청난 상승세다. 주택가격이 그만큼 비정상적으로 올랐다는 얘기다. 동부와 서부 해안 도시의 집값은 10년 만에 평균 두 배 이상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주택의 공급과 수요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인구 증가율과 새로운 가구 형성 비율은 10년 전과 비교할 때 오히려 낮다. 가계소득을 봐도 2001년 경기침체 이후에는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95년 이후 주택공급 제약은 거의 없었다. 이렇다 보니 95~2005년 중 새 집은 그 이전 10년보다 50% 이상 늘어났다. 게다가 주택 소유자의 수익인 임대료도 95년 이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주택가격이 이렇게 많이 오를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투기적 버블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80년대 일본과 마찬가지로 증권과 주택시장에서 버블을 동시에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버블에는 차이가 있다. 일본 주택시장의 버블 파열은 증권시장 추락과 동시에 일어났다. 반면 미국 증권시장의 거품 파열은 주택시장 버블을 조장했다. 미국 증권시장의 거품이 터진 2000~2002년에 투자자들이 주택시장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부추긴 측면도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 금리를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주택시장이 활성화되자 FRB의 초저금리 정책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택건설 등 부동산 업계가 창출한 일자리만도 2001~2005년 65만 개에 이른다. 반면 다른 민간 부문은 이 기간에 일자리가 113만 개나 줄었다. 주택시장이 ‘폭발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거래 건수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활발했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가계에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발생했다. 앉은 자리에서 고액 자산가가 된 미국 국민은 소비를 늘렸다. 인터넷 거품 파열과 그 후에 발생한 경기 침체 때문에 미국인의 소비는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전례가 드문 집값 상승으로 2001년 이후 주택 소유자들의 자산 증가는 무려 5조 달러에 이르렀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포도당이 순식간에 에너지로 전환하듯이 이같이 늘어난 자산은 즉시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

집값 급등에 따른 소비 증가는 2006년 한 해 동안 250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 해 GDP의 2% 수준이다.

반면 저축은 급감했다. 미국의 저축률 하락은 인터넷 거품과 함께 발생했지만, 집값 급등 이후 더 심해졌다. 구체적으로 미국인의 개인 저축률은 2005~2006년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대공황 시기인 31~32년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다.

최근까지 주택시장 활황은 거시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06년 3분기까지 ‘집값 급등→가계 재산 증가→소비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였다. 그러나 건설경기 붐으로 집이 초과 공급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재 팔리지 않은 신규 및 기존 주택 물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주택 중 빈집이 차지하는 비율(공가율)도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기서 빈집이 늘어난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주인이 팔거나 임대수익을 올릴 수 없는 빈집이 바로 주택가격 급락 요인이다.

미국 주택시장이 어떻게 갈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크다. 어떤 이는 집값이 연착륙해 실물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어떤 이는 집값이 더 하락해 실물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낙관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매물로 나온 집 중 매매가 성사되지 않은 비율이 20%나 된다는 사실을 설명해줘야 한다.

게다가 주택시장 호황 때 낮은 금리ㆍ담보비율을 적용해 비우량 고객들에게까지 제공했던 주택자금이 이제는 급격히 줄고 있다. 서브프라임 시장의 돈줄이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과거에는 서브프라임 시장이 전체 모기지 시장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에는 그 비중이 무려 25%에 이르렀다. 서브프라임 시장의 비중 확대에 비춰 볼 때 이 시장의 붕괴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비우량 고객들이 서브프라임 회사에서 돈을 빌려 산 집은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매물로 나온 주택들이다. 이 시장이 무너지면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가려는 사람들이 기존 주택을 팔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고리는 연쇄적으로 고소득층에까지 연결돼 있다. 결국 서브프라임 시장이 붕괴되면 중산층과 고소득층까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모기지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압류돼 매물로 나온 집 등이 주택가격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추가적인 집값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주택부문의 일자리가 줄고 뒤이어 소득과 소비의 감소가 나타나 실물경제에 큰 충격을 준다. 저축해 놓은 돈도 없는 미국 가계는 소비를 줄이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미국 주택시장 붕괴가 세계 주요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엄밀하게 말할 수 있는 이코노미스트는 거의 없다. 세계 경제지형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소비시장을 대신해 유럽과 일본ㆍ중국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제 규모는 2002년 이후 최근까지 60%나 커졌다. 구매력지수(PPP)를 반영하면 미국의 75% 수준이나 된다.

최근 5년 새 영국과 아일랜드ㆍ한국 등에서도 주택시장 거품이 발생했다. 나라별로 주택시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미국 시장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경제성장이 가속화하면서 오르기 시작한 금리가 주택시장 버블 파열을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주택시장을 보고 불안감이 확산될 수도 있다. 미국의 영향으로 각국의 주택시장이 동시에 급락한다고 장담하진 못하겠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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