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자전거 장세 중심 잡는 데 시간 걸릴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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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7면

‘짐을 너무 많이 싣고 달리는 자전거’.

요즘 세계 각국의 증권ㆍ금융시장이 덜컹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딱 연상되는 장면이다. 자전거는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고, 거기에 실려 있는 짐은 과잉 유동성에 의존한 자산가격 거품이다.

짐이 과하게 실려도 자전거가 튼튼하면 관성을 타고 잘 굴러갈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미국 경제가 5년째 호황을 구가하는 가운데 중국ㆍ인도 경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유럽과 일본 경제도 기지개를 켰다.

그런 자전거에 탈이 날 것 같다는 경고 메시지가 최근 나왔다. 미국 경제가 올 연말께 침체에 빠질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부터다. 그는 무리한 저금리 정책으로 세계적 유동성 잔치를 조장한 장본인이었다. 미국 경제가 가라앉으면 중국ㆍ인도ㆍ일본ㆍ한국 등 어느 나라 경제도 온전히 버티기 힘들다. 모두 내수보다 미국에 대한 수출로 성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불길한 조짐은 일부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선행지표가 점차 가라앉고 있다.

그동안 돈은 경제가 좋아진 것 이상으로 너무 풀렸다. 세계적인 저금리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로, 엔-캐리 트레이드(일본의 엔화를 싸게 빌려 다른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것)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들의 기동력 있는 머니 게임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의 자산가격은 급등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가 안정돼 있다는 이유로 과잉 유동성을 방치했다. 일각에선 지금 전 세계에 떠도는 유동성의 규모가 실물경제에 부합하는 적정 규모에 비해 최대 세 배나 된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린스펀의 말 등으로 세계 각국 투자자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갑자기 중국 증시, 미국 부동산 금융, 엔-캐리 등 모든 게 불안하게 다가왔다. 시장은 미세한 경제지표의 변화에도 널뛰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전거에 실린 짐이 과하면 조그만 돌부리에도 크게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전거는 결국 쓰러질 것인가. 아니면 중심을 잡고 다시 달릴 것인가. 아직은 쓰러지는 일(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와 자산가격 폭락)을 걱정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이 갖고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금리 인하다. FRB가 금리를 내리면 미국의 소비가 살아나고 주택담보대출 부실도 줄어들 것이다. 그럭저럭 세계 경제는 호황을 지속하고, 유동성 잔치는 더욱 요란하게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전거의 짐이 더 무거워짐을 의미한다. 결국 자전거가 펑크 날 수도 있다.

그래도 잔치는 일단 즐기고 볼 일이다. 앞으로 2년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고 내다보는 전문가가 많다. 하긴 시장에 위기감이 팽배할 때 실제 파국이 오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역사를 되돌아 보면 파국은 모두 낙관론에 푹 빠져 있을 때 소리 없이 엄습했다.
단기적으로 자전거가 중심을 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FRB가 21일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지만 아직은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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