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제 是是非非] 졸지에 불법 시설물 된 옥외 광고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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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20면

고속도로변에 흉물이 늘고 있다. 대기업이나 건설회사들의 이미지 광고가 붙어 있던 대형 입간판(야립간판)들이 하나 둘씩 벌거벗고 있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의 경우 비어 있는 야립간판이 90%에 달한다.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을 오가는 골목인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변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겨냥해 각 기업이 해왔던 광고가 중단되면서 허연 몸체만 드러낸 야립간판이 부쩍 많아졌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해 말 한시법인 ‘대구유니버시아드지원특별법’이 실효(失效)됐다. 이 법은 대회 지원을 위해 광고회사들이 야립간판을 세워 광고를 유치하고, 일부 금액을 기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었다. 이 법이 사라지면서 야립간판의 설치 근거도 함께 날아갔다. 야립간판과 일부 옥상간판, 옥외 홍보탑, 이동식 홍보차량 등 모두 353개의 광고물이 올해부터 ‘불법 시설물’이 됐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즉각 해당 광고회사와 기업에 공문을 보내 광고 중단과 시설물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광고가 내려졌고, 비어 있던 일부 시설물이 철거됐다. 행자부는 이참에 옥외 광고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야립간판의 경우 가로 20m, 세로 10m로 획일화돼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지난해 한 국회의원이 기금 횡령에 연루되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행자부는 특별법이 아닌 일반법으로 옥외 광고물을 다루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문제는 옥외광고 업체들이다. 일감이 사라지면서 10여 개 업체가 당장 파리를 날리고 있다. 이들은 “국회의 직무유기 탓”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ㆍ열린우리당ㆍ민주당이 지난해 정기국회 때 제각기 대체 법안을 발의해놓고도 정치싸움을 하느라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옥외 광고물은 1986년 아시안게임 이후 올림픽ㆍ대전엑스포ㆍ무주 겨울아시안게임 지원 특별법으로 이어진 근거법에 따라 20년 이상 중요한 광고수단이 돼왔다”며 “국회가 제때 법안을 처리하지 않아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대체 입법을 추진하는 행자부가 기존 시설물을 모조리 철거하라고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어차피 다시 만들 거라면, 개당 2억∼3억원의 설치비용이 드는 시설물을 당장 없앨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법원은 지난달 16일 이들이 제기한 철거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회복하기 어려운 업계의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고, 철거를 중지한다고 해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광고주 회사들도 불만이 많다.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목 좋은 곳에 있는 야립간판에 월 4000만원가량을 들여 광고를 하면 연간 수백만 명에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며 “항구적인 근거법이 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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