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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MA 연구비 대비 1000배 넘는 장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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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03면

역대 가장 성공한 연구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과학기술부가 최근 8대 성공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성과 및 시사점 분석결과’란 보고서에서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과기부는 밝혔다. 보고서는 1970년대 이후 성공한 연구 프로젝트의 경제학ㆍ리더십적 측면을 조명하고 있다. 특히 전전자교환기(TDX), D램,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분야의 성과가 컸다. 보고서는 “3개 분야의 매출액만 1981~2004년 정부가 국가연구개발사업에 투자한 총 연구개발비(47조원)의 4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과기부는 2004년 이후 시작된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등 차세대 성장동력사업도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몇몇 사업의 성공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청와대에 보고된 역대 8대 성공프로젝트

연구원 집단각서 쓴 TDX

‘연구원 일동은 TDX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한다.’ 1982년 최순달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은 최광수 체신부 장관에게 자신은 물론 연구원들의 서명이 담긴 서약서 한 장을 전달했다. 군사 프로젝트를 제외하곤 1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조차 드물었던 시절, 연구소는 240억원이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 당시 전기통신 기술은 초보 수준에 불과해 국내 학회와 정치권 등의 반대가 거셌다. 시민단체들은 “차라리 한강다리를 하나 더 놓으라”고 했다. 그러자 최 장관은 개발계획을 승인하는 대신 ‘각서’를 내라고 했다. 연구원들은 ‘혈서’를 쓰는 심정으로 배수의 진을 쳤다. 마침내 TDX 개발에 성공했다. TDX에는 모두 1076억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됐다. 매출액 6조9000억원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다.

만화 그려 대통령 설득한 D램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라디오ㆍTV 등은 물론 통신장비, 산업용 기기, 군수장비 등 쓰이지 않는 곳이 별로 없다. 1980년대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은 미국과 일본에 있었다. 선진국은 다른 나라들이 이 황금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일정 개수 이상은 판매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한국 ‘고위층’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전자기술연구소(ETRI)는 작전을 짰다. 연구원들이 직접 ‘반도체란?’이란 만화책을 만든 것. 만화책은 당시 오명 청와대 과학담당 비서관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과 경제부처 관계자에게 전달됐다. 이것이 관련 연구개발 착수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연구개발비는 2779억원이었다. 2004년 기준 81조5000억원의 국부 창출로 이어졌다.

군사작전하듯 진행된 CDMA

93년 가을. CDMA 형식의 이동통신 연구를 진행하던 ETRI 6연구동의 실험실 문에 명패가 하나 붙었다. 명패엔 ‘작전본부’라고 적혀 있었다. 삼성전자와 ETRI 등 국내 공동 개발주체는 작전을 수행하듯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원들에겐 ‘삐삐’도 지급됐다. 한밤중에도 달려나올 수 있도록. 정부 관계자들은 심야에 불쑥 나타나 개발 상황을 점검했다. 94년 4월 17일 ETRI 6연구동 실험실에서 마침내 첫 실험에 성공했고, 1995년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를 이뤘다. 연구개발비로 총 996억원이 투입돼 2004년까지 111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무려 1000배가 넘는 ‘성공한 장사’였다.

보고서는 “연구개발은 실패할 위험도 있지만 성공할 경우 천문학적 국부를 만들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며 “그것이 샌드위치 한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연구개발사업의 성공은 고용증대로 이어진다. 차세대평판표시장치 사업은 기술개발 착수시점에 종사자가 264명뿐이었다. 현재는 종사자가 4만6000명이다.

프로젝트의 성공 배경이라 할 리더십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78년) 시작한 TDX나 전두환 대통령 시절 착수한 D램(86년)은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 ▷국책연구소의 선행기술 개발 및 전수가 성공요인이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반면 노태우ㆍ김영삼 정부에 걸쳐 성공한 CDMA(89년 착수), HDTV(90년) 등은 정부와 민간의 공동협력이 주효했다고 봤다. 2000년대는 “민간이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정부는 조기상용화 및 표준화를 위해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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