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의 가정학(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남자가 부엌에 드나들면 「뭣」이 떨어진다」고 하여 여자가 하는 일에 남자가 관심을 갖는 것조차 금기로 삼았다. 「남자가 부뚜막 살림을 간섭하면 처자를 거느리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모두가 유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남존여비 사상의 잔재들이다.
1909년 미국에서 새로운 학문분야로 태동한 가정학은 건강하고 활력에 찬 생활,또는 의식주로 가족생활의 질적향상을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적용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한다면 가정학은 여성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그러나 1929년 이화여전에 가사과가 신설되고 그에 따라 가정학이 제도적 학문으로 발돋움하면서 가정학은 주로 여성교육만을 목적으로 한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합쳐 가정계열의 학과가 2백여개에 달하는데 그 재학생이 거의 모두 여학생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의 가정학은 역시 여성들만의 학문임을 느끼게 된다.
중학교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남녀 중학생들이 이수해야할 선택과목은 가정·가사·기술·농업·공업·상업 등 8개 과목인데 거의 예외없이 남학생은 기술 공업 등을,여학생은 가정·가사를 선택한다.
오늘날의 시대를 「유니섹스의 시대」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래는 패션계에서 만들어낸 말인데 남녀의 구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며칠전 TV화면에 등장한 한 고등학생은 여자옷 비슷한 것을 입은데다 귀걸이까지 매달고 있었다. 머리를 여자처럼 땋아늘인 젊은이도 보였다.
비단 이같은 차림새의 변화뿐만 아니다. 시장에 가보면 장보는 남성들이 제법 보이고,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남성들의 모습도 곧잘 눈에 띈다. 이쯤되면 가정학이 여성들의 전유물로 남을 수 없다.
교육부는 성차별 관념을 깨고,남녀평등교육을 실현한다는 취지에서 가정과 개정안을 마련,95년부터는 모든 남자중학생들이 필수로 가정을 배우도록 했다고 한다. 교과과정중에는 밥짓기·바느질·애보기 같은 것들도 들어 있다니 이 학생들이 후에 가정을 꾸미게 되면 그 가정의 모습도 훨씬 달라지게 되리라.<정규웅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