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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 게릴라' 국립극단 입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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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시인.시나리오 작가.연극 연출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해 온 '문화 게릴라' 이윤택(51.사진)씨가 15일 국립극단 예술감독에 내정됐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2년 임기로 2000년부터 김석만.김철리씨가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이씨는 내년 1월부터 예술감독직을 맡게 된다.

이씨가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직에 내정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국립극단은 그간 레퍼토리 작품의 부재, 극단의 높은 진입 장벽 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면에서 실험적이고 개성 강한 작품을 선보여 온 이씨의 영입은 국립극단에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장 김명곤 극장장은 "얼마 전 이윤택씨가 외부연출가 자격으로 국립극단과 '문제적 인간 연산'을 함께 작업할 때 보니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았다"며 "이씨가 국립극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을 중퇴한 뒤 시인.신문 기자를 거쳐 연극계에 발을 들였다.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를 결성해 일련의 흥행 연극을 내놓았다. 1999년엔 밀양의 한 폐교에 연극촌을 만들어 지방 공연 문화의 싹을 틔웠다.

그간 '오구''하녀들''햄릿' 등 연극 연출과 함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등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최근엔 10년 넘게 장기 레퍼토리로 인기를 끈 연극 '오구'를 영화로 만들어 감독 데뷔를 했다.

전방위에 걸쳐 활동하던 이씨는 국립극단 예술감독직 수행에 앞서 요즘 주변정리를 하고 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간판 배우인 정동숙씨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예술감독으로 남는다. 이씨는 오래 전부터 연희단거리패를 공동창작.집단운영 체제로 구축해 놓고 후학들을 양성해왔다. 또 연희단거리패가 내년 3월 대학로에 개관하는 '게릴라 극장'은 배우 김경익씨에게 운영을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독립영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올리기 위해 이 극장을 마련, 이름도 자신의 별명을 따 '게릴라'로 명명했다.

이씨는 국립극장 예술감독직을 맡은 것에 대해 "내 스타일을 요구하는 연출가이기보다 국립극단의 프로그래머로 봐달라"며 "연희단거리패 하면 '오구'가 떠오르듯 국립극단 하면 번뜩 떠오르는 작품을 레퍼토리로 구축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씨는 이를 위해 좋은 외부 연출가를 발굴해 함께 작업하는 등 극단의 시스템을 조금씩 보완해나갈 생각이다. 또 외부인에게도 연극 기법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씨는 요즘 자신의 첫 영화 '오구' 상영과 차범석 극작의 연극 '옥단어!' 공연 때문에 서울.부산.밀양을 오가며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다. 하지만 머리 속에는 내년부터 맡게 될 국립극단의 운영과 방향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는 "내가 직접 연출하는 작품은 임기말에나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게릴라' 이기보다는 '책임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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