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 태동 20년 통일에 힘 결집 "거듭나기" 다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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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70년대 초부터 한국적 풍토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아, 독특한 관점의 문제제기로 세계신학계의 주목을 모아왔던 민중신학이 그 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나흘간의 국제심포지엄을 가졌다.
지난 12일 오전11시 서울 숭실대 사회봉사관에서 개회예배로 막을 올린 한국민중신학국제심포지엄은 50여명의 국내외학자와 관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조발제, 분과발표 및 토론, 현장의 소리, 원로와의 대화, 민중문화의 방, 국제패널 등 다양한 행사를 거쳐 15일 오후5시 폐회예배를 끝으로 폐막됐다.
초기민중신학의 이론적 근거를 이뤘던 『민중신학』(Minjung Theo1ogy)출간 10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마련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한국민중신학에 대한 최초의 국제학술회의라는 점과 아울러 특히 80년대 중반이래 배출되기 시작한 민중신학의 제2세 대학자들이 대거참여, 그 동안의 민중신학의 변천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미래의 학문적 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 자리였다는 평가가 따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서광선 교수(이화여대)와 정현경 교수(이화여대)가 각각 민중신학 제1·2세대를 대표해 기조발제에 나섰는데 민중신학의 성립 및 변천과정을 개관하면서 그 미래적 전망에 대해 언급한 서 교수의 발제 내용이 특히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서 교수는 7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민중신학이 민중을 매개로 한 정치신학과 문화신학이란 두 갈래 기본성격을 띤 채 진행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민중신학자들이 독재정권에 대한학생들의 저항운동에 동정적으로 참여, 민중신학을 출발부터 정치신학의 일종으로 성격 지은 것은 그들이 과거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한 한국교회의 순교자적 전통을 이어 인권수호와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선교」라는 인식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민중신학이 이 같은 정치적 저항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예술, 전통종교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통해 민중의 해방적 영성 계발을 추구함으로써 문화신학으로서의 뚜렷한 지향을 보여왔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민중신학이 70년대 「증언의 시대」, 80년대 「운동의 시대」로 질적 변전을 겪으면서 방법론에서의 과학성의 결여, 새로운 교회론 및 예배형식 개발의 미비 등으로 침체와 후퇴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80년대 후반이래 신학운동의 방향을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에 집중함으로써 학문적 활로를 열 수 있는 대안마련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편으로 민중신학의 미래문제와 관련, 공산주의실험의 실패와 냉전종식, 남북한화해분위기의 조성, 시민운동의 일정한 성장 등에 따른 국내외적 전환기를 맞아 「민중」이란 개념이 앞으로도 더 이상 유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던짐으로써 참석자들의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사회과학적으로 민중이란 개념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으며 우리에게 과연 민중은 존재하는가. 70년대 한국사회를 「민중사회」라고 할 수 있었다면 90년대의 한국사회는 「시민사회」로 개편되고있는 것은 아닌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교수는 끝으로 90년대 이후 민중신학이 안아야할 중요한 과제에도 언급, 민중신학은 ▲정치신학으로서 남북 평화공존과 궁극적 통일을 위한 신학적 노력 ▲문화신학으로서 한국종교와의 대화를 통한 민중의 영성개발 ▲제3세계 신학과의 대화와 유대강화 ▲가부장적 억압체제 아래 있는 여성신학에 대한 배려 등에 더한층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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