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오르는 「기술전쟁」/이종대(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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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일간의 기술전쟁이 날로 가열되고 있다. 국력의 핵심이 군사력에서 경제력으로 대치되고 기술이 경제전쟁의 으뜸가는 무기역할을 담당하게 된 국력 결정 요인체계의 변화에 곁들여 미일간 경제력균형의 동요가 점점 확연해지는 주도권 이양기의 시대적 상황이 치열한 접전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연초에 부시 미 대통령이 동경을 방문,미국 자동차 판촉활동을 벌였던 사실과 최근 미국 의회에서 일본시장 개방압력의 성격을 짙게 띤 초강도의 무역법 개정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양국간 기술전쟁의 전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미,일 추격에 안간힘
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와 91년의 소련해체를 계기로 미국의 주도권 동요를 내다보는 저서·기사·여론조사들이,특히 미일 양국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21세기의 경제적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진단은 해가 갈수록 다수의견으로 굳혀져 왔다.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MIT의 경제학교수 레스터 서로는 그의 신간 『접존』(Head to Head)에서 미국·유럽·일본의 경제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내다 보면서 오늘날의 경제전쟁에서는 천연자원이나 자본보다 기술과 숙련노동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많은 저서들은 한결같이 열세만회를 위한 미국인들의 분발촉구를 빠뜨리지 않는다. 「일본이 승리하면 어떻게 되나」라는 근착 『포천』지 특집기사와 『비즈니스 위크』지의 특집기사 「산업정책」도 기울어져가는 국운에 대한 경종과 대응책 촉구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 산업지원을 골자로 하는 산업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미국인들의 절박해진 상황인식을 엿보게 한다. 산업정책의 과감한 도입을 주장하는 논의의 대부분은 당연히 기술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업계의 일각에서는 걸프전때의 「사막의 폭풍」 작전과 같은 아주 특별한 기술력 증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미국인들의 다수가 군수산업의 민수산업 전환에 찬성하고 있다는 한 여론조사의 결과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대응책 마련에 떠들썩
기술전쟁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복잡하게 짜여져 있는 전선을 특징으로 한다. 그 전선의 중요한 일부를 형성하는 것이 자동차산업이다.
미국이 1인당 국민총생산과 자동차생산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선두자리를 일본에 내준 것이 모두 80년대의 일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작년 8월 일본의 닛산자동차회사는 1회 충전으로 최고시속 1백30㎞,최대거리 2백50㎞의 주행이 가능한 전기자동차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로부터 두달후 부시 미 대통령은 에너지부와 3대 자동차메이커,그리고 미국의 첨단전지컨소시엄이 전기자동차용 차세대축전지를 공동개발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일본 자동차업계에서는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자동차산업에서의 열세를 미국이 단번에 역전시키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돌기도 했다.
주요 산업부문에서의 미일간 각축을 보여주는 사례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기술전쟁에서의 패배가 초래할 비극은 벌써부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기술의 고지를 장악한 일본 기업들이 카르텔을 형성,미국의 고객기업들로부터 독점이윤을 뽑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 업계의 판단이다. 실제로 일본의 반도체기업들이 89년까지 2년동안 미국 컴퓨터 메이커들로부터 무려 50억달러에 달하는 초과이윤을 거둬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반도체메이커가 미국 수요자들에게 고기술 부품의 공급을 1년이상이나 지연시키는 일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미국 MIT의 찰스 퍼거슨교수는 이를 가리켜 「기술­산업의 군국주의」로 규정한다. 턱없이 높은 기술의 가격은 기술전쟁의 패자에게는 독점의 횡포로 비치겠지만 승자쪽에서는 당연한 전리품으로 치부될 것이다.
○기술 무장만이 사는길
처연함과 긴장감으로 얼룩진 기술전쟁이 우리에겐 결코 「강건너 불」일 수 없다. 그 불똥은 오래전부터 국내산업과 시장에 뜨겁게 날아들고 있다. 미일간의 뜨거운 기술전쟁은 세계적 범위의 기술무기화시대에 살아남는 길이 오로지 기술로 무장하는 길밖에 없음을 가르쳐주고 있다.<기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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