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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신 밀월시대' 여나 동북아 외톨이 신세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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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57년 6월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는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찾았다.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확히 50년의 세월이 지나 기시의 외손자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가 일본 총리 자격으로 26일 워싱턴을 찾는다. 북핵 문제에 대한 공동 대처와 납치 문제에 대한 협력 약속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아베 총리로선 '신 밀월시대의 개막' 이냐, '밀월시대의 종언'이냐를 결정할 중요한 회담에 임하게 된다.

그동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쇠고기 문제나 북핵 문제 같은 민감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들어선 이후의 양국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당장 미국의 대북 대응 전략이 유연하게 바뀌었다.

그동안 백악관을 믿고 초강경 수를 두던 일본의 자세 변화는 쉽지 않다. 게다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반응도 전에 없이 싸늘하다. 또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을 촉구하는 미 의회의 분위기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한마디로 아베 총리로선 첩첩산중이다.

특히 북핵 문제를 둘러싼 대응과 납치 문제를 놓고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치열한 신경전과 설득전이 전개될 공산이 크다.

일 총리 관저의 고위관계자는 "아베 총리는 '미국이 온건 노선으로 전환했지만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며 미 국무부의 '콘돌리자 라이스-크리스토퍼 힐' 라인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내비칠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은 25일 한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설득에 부시 대통령이 (유화적)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현 대북 유화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게 되면 아베 총리와의 향후 협조체제는 혼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납치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부시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일본은 납치 문제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납치 문제의 진전이란 뭘 뜻하느냐"고 직접 캐물을 공산이 크다. 6자회담에서 "초기단계 조치에서 일본은 납치 문제가 진전이 없는 한 에너지 지원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 대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7월의 참의원 선거에 정권의 운명을 건 아베 총리로선 국내 지지층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도 납치 문제에 관한 한 강경 자세를 관철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실제 아베 총리는 26일 출국에 앞서 "납치 문제는 '철의 의지'를 갖고 해결할 것임을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철의 의지'라는 막연한 설명만으로 미국을 설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베 총리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동북아의 '외톨이'로 전락하는지, 혹은 50년 전 기시 총리가 성공했듯 미국의 전략적 지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할지 주목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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