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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 커진 만큼 성숙' 한국 증시 업그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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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 UBS증권 안승원 전무는 한동안 거래가 뜸했던 외국 투자기관으로부터 요즘 "괜찮은 한국 주식을 골라 달라"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대개 한번 사면 수년씩 묻어 두는 외국 장기 펀드들이다. 안 전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고 국가신용등급이 상향될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 한국 주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전했다. 서울 증시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2. 11일 일본은행과 재무성은 2월 해외 주식투자 동향을 내놓으면서 "한국 주식을 368억 엔(약 3000억원)가량 샀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중국(323억 엔), 홍콩(270억 엔), 싱가포르(157억 엔) 등 다른 아시아 주식 매입 규모를 크게 웃돈다.

푸르덴셜투자증권 이영원 연구위원은 "해외에선 미국 주식만 살 정도로 보수적 투자로 유명한 일본 기관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한국을 선진국 증시로 간주하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증시가 50년간 몸에 걸친 '아동복(신흥 증시)' 대신 '성인 정장(선진 증시)'으로 갈아입고 있다. 지수가 연일 상승하면서 몸집(시가총액)이 커지고 차분하고 성숙한 모습도 갖췄다.

◆선진 증시로 가나=코스피지수의 일간 변동성은 올 들어 처음 1%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중국 상하이A지수(2.32%)와 홍콩 항셍지수(1.24%)는 물론 일본 닛케이225지수(1.05%)보다 낮은 것이다. 일간 변동성이 0%에 가까울수록 안정적이다. 우리투자증권 이윤학 연구위원은 "일간 변동성이 적다는 것은 성숙한 시장으로 가는 중요한 징표"라고 말했다.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월 기준으로 11.345배에 이른다. PER이 11배 위로 올라선 것은 우리 증시가 본격 개방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신영증권 김세중 팀장은 "PER이 박스권을 뚫고 올라 앞으로 선진국 수준(15배)까지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배경에는 2005년부터 적립식 펀드로 대표되는 장기.간접투자 문화가 정착되고 최근 뚜렷해진 외국인 순매수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올 들어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증시가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랠리=서울 증시가 상승세를 지속하는 배경에는 세계적인 증시 강세가 버티고 있다. 미국은 주택경기가 침체에 빠졌지만 애플.보잉 등 주요 기업의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에 의존했던 단발 엔진형 세계 경제가 최근에는 중국.인도 등 신흥국가까지 가세해 쌍발 엔진을 달았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미국의 성장.소비.고용지표가 연착륙을 예고하고 있고 신흥국가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불어넣어 성장축이 다변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적으로 흘러넘치는 유동성도 증시 상승에 기폭제가 되고 있다. 미국.일본이 금리를 올릴 조짐이 보이지만 엔화와 같은 저금리 통화를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런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주식 자산 투자를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펀드 활성화 유지가 열쇠=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이달 24일 현재 38조2639억원으로 올 들어 4조5100여억원 줄었다. 지수가 오르자 환매가 몰리면서 지수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5년 이후 가입한 적립식 펀드가 '심리적인 만기' 시점인 3년째를 맞아 환매가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이 아무리 많이 사도 큰손인 기관들이 팔아치우는 양상이 계속되면 우리 증시의 지구력이 쉽게 떨어질 수 있다.

표재용.최준호.고란 기자

■ '승승장구' 멕시코 증시
미와 FTA 체결 뒤 급성장
한국 증시도 성장 기대감

한.미 FTA 타결이 한국 증시에 호재가 될 것이란 관측이 잇따르는 가운데 최근 멕시코 증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향후 국내 증시가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멕시코 증시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멕시코는 우리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FTA를 체결(1994년)한 것과 외환 위기(95년)을 겪었다는 점이 엇비슷하다. 그런 멕시코 증시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660%나 급등했다. 최근 10년간 상승 기록으로서는 세계 최고다. 올해에도 이런 순항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멕시코의 Bolsa지수는 올 들어 최근까지 12% 이상 올랐다. 이번 달 들어서는 연일 최고치 기록을 깨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의 FTA 체결 전만 해도 한 개도 없던 멕시코 증시 상장 외국계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5개에 달한다. 멕시코 '토종 상장사'176개사보다 많은 숫자다.

멕시코 증시가 이처럼 질적.외형적으로 탈바꿈한 가장 큰 배경으로 이른바 'FTA 효과'가 가장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위원은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인 미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시장 중심주의와 극단적인 효율을 따지는 풍토가 자리 잡은 뒤 증시의 체질이 크게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우리 거래소 시장도 이르면 올 상반기 중국 기업을 첫 외국계 상장사로 유치하는 등 본격적인 국제화를 꾀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증시의 국제화도 멕시코를 닮아갈 확률이 높다"고 관측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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