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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악사, 런던에서는 더 벌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거리의 악사는 워싱턴보다 런던에서 더 벌 수 있을까.

1월초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워싱턴 랑팡 지하철 역에서 '거리의 악사'로 변신한 데 이어 이번에는 런던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17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런던 워털루 역 옆 철교 아래에서 찍은 '몰래 카메라' 실험의 주인공은 올해 42세의 타스민 리틀(www.tasminlittle.net). 무려 23장의 음반을 낸,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다.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와 길드홀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영국의 유명 TV 탤런트 조지 리틀의 딸이다.

1848년 템즈강 남쪽 사우스 뱅크에 지은 런던 워털루 역은 영국 최대 규모의 기차역. 열차 플랫폼만 19개나 된다. 영국 남서부로 출발하는 통근 열차(LSWR)를 비롯, '도버 해협 터널(Channel Tunnel)'을 통과해 유럽 대륙의 파리와 브뤼셀로 향하는 유로스타가 출발한다. 런던 시내 지하철은 베이커루.노던.주빌리.워털루 앤 시티 라인 등 4개 노선이 이곳을 통과한다.

워싱턴 실험은 워싱턴포스트 선데이 매거진 팀이, 런던 실험은 인디펜던트 지가 취재했다. 런던의 실험 결과는 워싱턴과 거의 비슷했다.

미 연방 정부 청사에 출근하는 수천 명 가운데 조슈아 벨의 연주를 듣기 위해 멈춰 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런던에서도 대부분은 워털루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 음악을 듣기 위해 걸음을 멈춘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조슈아 벨이 워싱턴 지하철 역에서 45분간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동안 1분 이상 걸음을 멈추고 음악에 귀기울인 사람은 단 7명. 조슈아 벨은 32달러와 동전 몇 푼을 벌었다. 그중 한 명은 20달러짜리 지폐를 놓고 갔다.

런던 워털루 역에서도 몰래 카메라 실험은 워싱턴에서처럼 45분간 실시됐다. 타스민 리틀이 벌어들인 돈은 14파운드 10실링. 미국 돈으로 환산하면 28달러 20센트다. 조슈아 벨의 수입보다 4달러 적다. 900~1000명의 행인 가운데 음악에 발걸음을 멈춘 사람은 8명. 대부분이 관광객과 젊은이들이었다. 10대 소년 3명이 음악을 듣다가 돈을 던지고 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하지만 워싱턴 실험은 바쁜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였고, 런던에서는 오후 시간이었으니 단순 비교는 무리다.

런던에서는 행인 가운데 세 사람이 타스민 리틀의 얼굴을 알아봤다. 함께 지나가던 두 사람은 워털루 역 근방에 있는 사우스뱅크 센터(로열 페스티벌 홀)에 연습을 마치고 가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노숙자… 그는 리틀이 연주하던 바이올린이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것을 알아챈 것일까. 노숙자의 이름은 크레모나, 묘하게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고향인 크레모나와 이름도 같았다.

리틀의 연주를 듣다가 바구니에 지폐를 놓고 지나간 한 프랑스 출신 사업가는 워털루 역에서 파리행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그는 인디펜던트 지 기자 제시카 더켄에게 "(워털루 역은)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곳이다. 다리 위로는 기차가 지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에 귀기울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선데이 매거진의 보도가 나간 후 뉴욕 뉴스데이의 음악평론가 저스틴 데이비슨은 자신의 블로그 '나머지는 소음이다(The Rest is Noise)'에서 "이런 실험을 제대로 하려면 장소를 워싱턴의 '더 몰(The Mall)'이나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 파리 퐁피두 센터 광장 같은 곳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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