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피해 빠른 보상 길 열렸다|중앙분쟁 조정위 본격 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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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인근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나 공사장에서 날아오는 먼지·소음 등으로 피해를 보고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 차례 구청이나 면사무소에 민원을 내고도 해결이 되지 않아 현장으로 몰려가 농성을 벌이기도 하지만 정작 피해보상이라도 받으려고 소송을 내면 몇 년씩 법원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불편을 겪게 마련이다.
대구 페놀오염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7월 발족한 중앙환경분쟁 조정위원회가 최근 페놀사건과 골프장 농약피해분쟁 등 두건의 분쟁을 조정, 처음으로 골프장 농약피해를 인정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나섬으로써 피해당사자가 재판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지게 됐다.
환경분쟁조정제도는 피해 입증을 본인이 직접 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해야하는 재판과 달리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대신해줄 뿐만 아니라 신청절차가 간단하고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빠른 시일 내에 보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활성화돼야 할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1차 조정기구인 지방환경 분쟁조정 위원회가 비상설로 운영, 신청접수 및 처리를 각 시·도가 맡고 있어 지방과 중앙간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페놀사건 조정=대구지방 분쟁조정 위원회에 피해보상 조정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2천48건. 이 중 조정이 곤란하다고 판단해 지난해 11월 중앙위원회로 넘어온 것이 1천4건이었다.
중앙위원회는 이중 당사자 합의가 안된 69건을 심사, ▲당사자 면담 ▲정신적 피해배상과 관련한 세미나 ▲페놀피해인과 관계규명을 위한 전문가 회의 ▲3차의 조정위원회 등을 거쳐 페놀로 인한 것으로 인정되는 구토·설사 등 36건은 2만2천∼1백만원의 조정액을 제시하고 나머지 심장질환·간염 등 페놀과 상관없는 질병 치료비나 정신적 피해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중앙위원회가 제시한 조정액은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지 않은 피해 실비 수준인 총 5백32만원으로 요구액인 1억4천여만원의 4%에 불과, 행정조정치고는 너무 인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페놀에 오염된 물을 마시고 아버지가 뇌사로 사망해 가정이 파탄됐으므로 1억원을 배상하라든지, 앞으로 10년간 보약 값으로 1억원을 배상하라는 등의 억지 요구도 많아 앞으로 분쟁조정 제도가 정착되려면 먼저 요구하는 배상액 자체가 상식선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골프장 농약피해분쟁=경기도 용인군 한성 골프장 아래에서 양어장을 운영하는 김광식씨(39)는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농약이 개천으로 흘러들어 89년부터 홍돔 등 물고기가 떼죽음 당했다고 주장, 지난해 11월 경기도 지방분재 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올 1월 이 분쟁을 넘겨받은 중앙위원회는 당시의 농약농도 등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역추적, 골프장에서 제출한 89년부터 이년까지의 농약사용자료를 검토해 그로포·할로스린 등 물고기에 해로운 농약을 사용한 사실을 확인한 후 농약사용량과 기상청의 용인지역 강우량을 분석한 결과 농약이 빗물에 섞여 개천으로 흘러들어 양어장 물고기에 만성 독성 등의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인정, 3천5백76만원의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골프장 농약피해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비슷한 유형의 조정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문제점=현재 직할시·도별로 지방환경 분쟁위원회가 구성돼 있기는 하나 신청접수에서부터 연락·사실조사·심사보고서 작성·위원회 소집 등 모든 절차는 시청·도청 환경보호과에서 하도록 돼있어 고유업무에도 바쁜 관공서들이 접수를 기피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실제로 이번에 조정이 이뤄진 두건 모두 언론을 통해 사회 문제화된 것들로 다른 분쟁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행정지도 등으로 무마하고 있어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과 중앙의 위원회 체계를 일원화한다든지, 고유업무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손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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