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법원 무죄평결유도 의혹/미 법률가들 재판과정 문제점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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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재판부 선정·심리 모두 법상식 무시/배심원들도 흑인기피증 가진 집단/피해자에 변명기회조차 안줘
LA흑인폭동의 발단인 로드니 킹 사건의 평결은 재판의 전과정이 가해자인 경관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됨으로써 미 사법부가 의도적으로 무죄평결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내 법률전문가 및 인권변호인 단체측은 『폭행경관들에 대한 무죄평결은 법상식을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평결』이라는 비난과 함께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의혹들을 조목조목 제기하며 미 사법부측의 불공평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으로 ▲법원의 선정 ▲배심원 구성 ▲증인채택 ▲심리진행 방법 등을 들고 있다.
우선 로드니 킹 사건이 당초 LA 카운티지방법원에 접수됐음에도 재판장소를 LA교외인 시미밸리지방법원으로 이송한 것 자체가 경관들에게 유리한 평결이 내려지도록 유도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그 근거로 시미밸리법원이 위치한 벤추라카운티 지역민 상당수가 전 현직 사법부관계자 및 경찰들로 흑인과의 충돌을 피해 이 지역으로 옮겨 온 특수집단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번 사건의 평결을 맡은 배심원들이 지역 주민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됐다고는 하지만 혐오증에 가까운 흑인기피증을 갖고 있는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백인경관들에게 유리한 평결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폭행 경관들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이 『재판장소가 LA카운티만 벗어나면 어디서든 이길 수 있다』고 확언했던 점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변호인단과 법률전문가들은 배심원의 평결이 ▲경찰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거리 범죄에 대한 공포 ▲인종편견으로 요약되는 지역민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뿐 『사회전체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배심원제의 본래 취지에는 크게 어긋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증인채택과 심리방법 등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부분이다.
이번 재판과정에서 로드니 킹을 집단구타한 4명의 경관은 모두 증인으로 채택돼 자신들의 입장을 생생하게 변명할 기회를 갖는 반면 정작 피해자인 킹은 증언대에 한번도 서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검찰측과 재판부측은 『로드니 킹이 증언대에 나설 경우 그의 전과에 대한 자술이 불가피하고 이는 곧 배심원들에게 편견과 예단을 유발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 정반대의 엇갈린 해석이 가능한 비디오 테이프를 검증하면서 배심원들로 하여금 가해자측의 주장과 변명만을 일방적으로 듣게 함으로써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평결이 내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로드니 킹 사건은 평결에 참여했던 배심원들조차 『만일 킹이 직접 당시 상황과 입장을 설명했더라면 다른 평결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7일간의 심리과정에서 경관들의 집단폭행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30회이상 연속 반복 상영한 것도 가해자에 대한 유리한 평결을 유도하기 위한 교묘한 심리작전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킹을 4명의 경찰이 집단폭행하는 장면은 한두번 볼때는 끔찍하고 흉포하게 느껴지지만 이를 수십회 반복해 보게되면 폭행행위 자체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심원들은 폭행사실에는 무감각해진채 ▲명령불복 ▲검거초기 혐의자의 반항 ▲총을 휴대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을 강력히 내세운 경관들과 변호인단의 주장에 휘말려들었다고 인권변호인단 및 법률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재판의 전과정이 의혹투성이로 비춰지자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은 『테이프만이 증거의 전부는 아니었으며 경관들의 증언,킹의 행동 등 모든 정황을 참고로해 결정을 내렸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대 법대 버트 뉴본교수아 LA변호사 신디아 매클레인 힐 등은 『재판의 진행과정으로 미뤄보다 배심원들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며 평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미주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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