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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로맨틱 코미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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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연말을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가 택할 수 있는 괜찮은 소재 중 하나다. 할리우드 영화만 봐도 "크리스마스잖아요"라는 한 마디에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어보이는 남자한테 미모의 여인이 그냥 넘어가고, 이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평소에는 꿈꾸기 힘든 대담무쌍한 고백이 이뤄진다.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크리스마스가 '섬싱 스페셜'이 일어나는, 아니 일어나야만 하는 그런 날이 돼버렸기 때문일까. 17일 개봉하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도 말하자면 그런 성탄절의 '마법'에 기댄 영화다.

무대는 흥청거리는 대전시 유성이다. 어린 시절 뜨거운 온천물에 자신을 처박았다는 이유로 온천파 두목 석두(박영규)를 죽도록 미워하는 순경 병기(차태현)는 이 철천지 원수와 삼각 관계에 놓인다. 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평범한 볼링장 직원 민경(김선아). 병기는 쌍절곤을 만만치 않게 휘두르는 자칭 쿵후 1단이지만 포순이 차림을 하고 경찰 홍보나 해야 하는 신세다. 민경은 소방대원인 애인에게 차여 생일이자 청춘 남녀 최대의 명절인 성탄절을 외기러기로 보내야 할 판국이다.

*** 전형적 삼각관계 기본틀

영화는 삼각 관계를 이용한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로 치닫는 대신 욕심을 더 부린다. 이 영화가 노리는 바는 말하자면 '시간적 배경:크리스마스 무렵, 공간적 배경:유성 '등장 인물:병기.민경.석두 외 다수'식의 풍경화다. 그래서 주변 인물들의 사연으로 곁가지를 마구 친다.

성탄절을 성(性)스럽게 보내려 어떻게 하면 쌈박한 여자 한명 꼬셔볼까 고민하는 고등학생들, 온천 아가씨 선발대회에 입상할 꿈을 꾸는 백화점 주차요원 향숙(김지영), 에로 영화 '에로 크리스마스'를 촬영하는 제작자, 촬영 현장을 몰래 엿보고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스님 등의 에피소드가 세 남녀의 사랑 싸움과 교직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짜는 옷감은 씨줄과 날줄이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는다. 에피소드는 갈래갈래 많은데 연결 고리가 튼튼하지 못해 애초 겨냥한 웃음이 시원하게 터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석두가 민경에게 돌아간 어머니 얘기를 하다 별안간 자장가 '섬집 아기'를 부르는 장면이나 트럼펫을 부는 여학생을 두고 '입심'이 대단하겠다며 왕성한 성적 욕구를 발산하는 고등학생들의 '몽정기'식 소동, 온천 아가씨 선발 대회에 나가 달걀을 입에 넣었다 껍질을 까 뱉어내는 향숙의 묘기 등은 다 그 나름대로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웃음의 유효 기간은 몇분을 채 가지 못한다.

*** 산만한 에피소드 덧붙여

코미디 하면 저마다 한가닥씩 한다는 차태현.김선아.박영규 세 배우들도 산만한 전개와 평이한 연출의 한계에 부딪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두 남녀의 사랑은 마법처럼 이뤄지지만 이 영화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과천선을 하고 새 아침을 맞는 그 정서적 상쾌함이 불행히도 없다. 뉴욕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이건동 감독의 데뷔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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