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그림 값 "요지부동"|『월간 미술』서 올 상반기 동향 조사|화랑선 마진 줄여 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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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화랑가의 오랜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화가들의 작품 값은 요지부동이다.
일부 화가들의 작품 값이 다소 떨어지거나 오르는 등 약간의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거래에 있어선 10∼20%가량 싸게 살 수 있는 경우가 이전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이 때문에 화랑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그림 값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미술 전문지 『월간 미술』이 5월호 특별 기획 「92상반기 그림, 얼마나 바뀌었나」에서 최근의 그림 값 동향을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월간 미술』이 올 3∼4월 열렸던 전시회를 중심으로 조사한 그림 값과 지난해 9월 조사했던 그림 값을 비교해보면 (도표 참조) 이렇다할 변화가 없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몇몇 인기 화가들의 경우 작품 값이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약간씩 오른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한국화 부문에서 성재휴·이종상·황창배·석철주·김병종씨 등이, 서양화 부문에서 권옥연·김영주·김종복·한운성씨 등이 강세를 보였다.
반면 오지호·장욱진·최영림·김옥진·변종하씨 등의 작품 값은 다소 하락세를 보였다. 이밖에 대부분의 화가들은 화랑가가 침체되기 이전의 작품 값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화랑가의 전반적 「호가」는 이처럼 지난해와 거의 비슷하지만 실제 거래 가격은 일반적으로 10∼20% 정도 낮은 선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고객들의 발걸음이 뚝 떨어져 화랑가는 파리를 날리고있다.
그림 값이 이처럼 할인 판매되고 있는 것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극심한 불황을 겪어온 화랑들이 자신들의 마진을 상당히 희생해가면서까지 그림을 팔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불황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그림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작품 소장가 층이 대부분 여유있는 계층이어서 여간해선 그림을 다시 내놓지 않고 있고, 미술품 경매 제도가 정착되지 못해 그림 값이 화가·화랑들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년이 넘도록 불황을 겪으면서도 인기 화가들이 작품 값을 그대로 고수하자 화랑들은 최근들어 작품 값이 비교적 싼 30∼40대 화가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이 30∼40대 화가들은 일률적인 호당 가격제를 따르지 않고 작품성·크기에 따라 그림 값에 차별을 두는 등 미술 유통 시장에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화랑가는 이같은 그림 값의 잠정적 추세가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고가 (2천만원)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시행 여부에 따라 크게 변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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