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랑스 대선 '남과 여' 대결로 내달 6일 결선 투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파 사르코지 후보는

'프랑스 우파 50년 역사상 최고의 웅변가 정치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 어느 정치무대에서나 대체로 우파보다는 좌파 정치인의 화려한 언변이 화제였다. 프랑스만 해도 1970~8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이 지스카르 데스탱을, 90년대 리오넬 조스팽이 자크 시라크를 연설로는 꼼짝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언제 어느 토론 자리에 나서든 그는 공격적인 자세로 상대를 당황시킨다. 변호사라는 직업에다 예산.내무 장관 등 다양한 정치경력을 가진 그는 웅변가뿐 아니라 이론가의 모습도 갖췄다. 연설문도 언제나 본인이 직접 꼼꼼히 하나하나 고치곤 한다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이런 그를 두고 사르코지 캠프에서는 '준비된''완벽한' 대통령후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한치의 빈틈도 없는 그의 모습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터진 북역의 폭력사태 당시 사르코지는 망설임 없이 아프리카계 청년들의 일탈에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치안을 원하는 많은 프랑스 사람에게 믿음을 준 동시에 이민자 소외 문제를 걱정하는 적지않은 국민을 적으로 만들었다.

'검은색 아니면 하얀색'이 그의 정치 스타일이다. 기회주의자라는 비난도 나온다. 시라크 진영에 몸담으면서 정치에 입문한 그가 1995년 선거 당시 당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나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쪽에 줄을 섰던 일 등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와인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 등 개인적인 기호에서도 '멋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그는 여러 측면에서 역대 우파 대통령후보와도 닮지 않았다. 출신부터 그는 헝가리계 이민 2세다. 보통 부유하고 귀족적인 집안 자제들이 우파에 입문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 정치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 출신도 아니다. 파리국립대학의 법학과를 나온 그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잡초처럼 혼자 큰 정치인인 셈이다.

미국에 정서적으로 가까운 것도 그렇다. 선거 운동 기간 루아얄은 중국에, 사르코지는 미국에 다녀왔다. 팍스아메리카나에 반기를 들면서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살려 인기를 끌던 전통적인 드골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우파답게 강한 프랑스를 모토로 제2의 핵항공모함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고, 문제 없는 사람만 이민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이른바 '선택적 이민'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입장이지만 프랑스 기업의 해외이전 등에는 반대하고 있다. 둘째 부인 세실리아와 별거했다가 최근 재결합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좌파 루아얄 후보는

지난달 프랑스 민영방송 TF1의 '여러분이 판단해 보세요' 시간. 유권자와 후보가 토론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연단에 서 있던 사회당 대선 후보 세골렌 루아얄이 갑자기 방청석으로 내려갔다. 장애인 정책을 놓고 휠체어를 탄 유권자와 대화하던 중 눈물을 글썽이며 그에게로 다가가 포옹했다. 애처로운 표정으로 장애인에게 몸을 굽힌 그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된 것은 물론이다.

루아얄을 표현하는 데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장면이었다. 이전까지 침체에 빠졌던 루아얄은 이날 얼굴 표정 하나로 지지율 하락의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루아얄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감성 정치다. 이런 점 때문에 유권자들은 '루아얄' 하면 떠오르는 상품을 부드러운 크림 타입의 비누로 골랐다. 거부감 없이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는 그만한 정치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연약한 인물이 아니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1953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이던 서아프리카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육군 대령의 딸로 태어난 그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강하게 자랐다. 지난해 말부터 사회당 원로들의 끊임없는 공격과 비판에도 끄떡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저력과 배짱은 여기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1차 투표 직전 당내에서 중도파인 프랑수아 바이루 후보와의 연대를 제안했을 때 이를 과감하게 거부한 일도 외모와는 다른 뚝심을 보여준다. "결선 진출도 비관적"이라며 바이루에 손을 내밀라고 했지만 그는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그로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에게 가장 아픈 지적은 세련된 외모에 비해 내실이 없다는 비판이다. 올 초부터 외교.국방 문제와 관련, 여러 차례 말 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사르코지가 1차 투표 직후 "루아얄은 이제 (일대일 토론에 나와) 진정한 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자신만만해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루아얄은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아 한 계단씩 올라오며 내공을 키운 정치인이란 점을 강조한다.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인 그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환경부 장관 등으로 풍부한 경력을 쌓아 행정 경험도 충분하다.

사회당과 어울리지 않는 귀족풍이 그에게는 오히려 약점이다. 특히 20억원대의 부동산 부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반사회당적인 정책들과 맞물려 일부 지지층이 이탈하기도 했다. 대학 동창이자 정치적 동지인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와 법적인 동거(부부와 동일한 권리 보장)하며 네 자녀를 두고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