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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발 묶는 화염병시위/김종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도덕성과 명분은 학생운동의 생명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의 학생운동이 부침과 영욕을 거듭하면서도 면면히 이어진 것은 독재정권과 불의에 항거하고 있다는 도덕성과 명분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사회주의의 몰락에 이어 학생운동에 대한 일반학생과 시민들의 지지가 예전같지 않은데 따른 조바심 또는 반발감 때문인지 학생운동이 자꾸만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23일 서울 필동 대한극장앞 6차선도로를 점거하고 동국대생들이 벌인 화염병시위는 학생운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국대생들이 학내에서 「부정선거 규탄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위한 결의대회」를 마치고 명동성당까지 가두행진을 하겠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오후 3시50분쯤.
도로중앙선을 따라 행진을 벌이던 학생들은 경찰이 인도로 올라갈 것을 요구하며 저지하자 대한극장 앞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6차선 도로 1백50여m를 점거했다.
삽시간에 버스와 승용차가 수백m씩 늘어서면서 이일대 교통은 일순 수라장이 됐고 차에서 내린 일부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시위를 해도 생계가 바쁜 시민들의 차는 막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며 강력히 항의했다.
학생들은 버스들이 밀고나오고 승용차들의 빵빵거리는 소리에 한풀 꺾인듯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해 학교쪽으로 5백여m를 되돌아갔다.
한동안 대치상태를 계속하던 학생들은 시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오후 5시20분쯤 갑자기 들고온 화염병 1백50여개에 불을 붙여 무방비상태로 있던 전경들을 향해 20여분간 소나기처럼 쏟아부었다.
도로 한편에는 학생들에 막힌 버스와 승용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 사이에서 『아이구,버스안에라도 화염병이 들어가면 어쩌려고 저렇게 마구 던지나. 경찰은 최루탄을 한발도 안쏘는데 저러면 자기들만 욕먹지…』하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지난달 단국대생들이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대응을 안하자 학교앞 외국인 아파트에 화염병을 던지고 간 일이나,아직 역사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백범암살의 배후라며 서총련 학생들이 미 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진 것이나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든간에 이날 동국대생들의 시위는 결국 『우리가 이만큼 과격하다』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 듯했다. 기성세대 탓만 하지말고 학생들도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할 때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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