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경선 누가 유리한가(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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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구도가 김영삼­이종찬대결로 압축되기 까지에는 사연과 곡절이 많았다.
3당통합후 후계구도와 관련해 단속적으로 계속되던 당내분이 가닥을 잡은 것은 금년 1월초 노태우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직전이었다. 노대통령은 회견에서 민주적 경선을 제시했지만 내막적으로 김대표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좋을 언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격상 공개적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총선결과에 따라서는 흔들릴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YS 일단은 고지선점
아니나 다를까. 김대표 중심으로 치른다고 공언했던 총선거가 패배로 끝나자 즉각 민정·공화계로부터 지도부 인책론이 제시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김대표는 그의 장기인 맞받아치기로 대응했다.
총선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지 못한 당에는 책임이 없고 선거를 좌지우지하다 막판 악재를 만들어 낸 정부측이 책임져야 한다고 나섰다. 대통령 책임론을 들고 나온 셈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대표는 내친김에 한걸음 더 나갔다. 대통령과 5월 전당대회에서 자유경선으로 후보를 뽑기로 결정한 바로 다음날 자신의 대통령후보 출마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김대표의 언동은 그렇지 않아도 총선결과에 마음이 상했던 노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 대노했던 것으로 들린다.
김대표는 대통령과 자신이 한 몸이 되어 차기 정권창출에 나선 만큼 경선에서의 패배는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고 공언했지만 청와대쪽에선 자유경선과 엄정관리란 말만 반복할 뿐 전혀 움직여주지 않았다. 김대표 진영에서 제한경선론과 박태준 최고위원 배제론을 띄워도 긍정적인 반응이 없었다. 이 때가 김대표진영으로선 가장 불안한 시기였고 그러다 보니 분당론 같은 막말까지 흘러나오게 됐다.
친김대열에 선 대통령 주변인물들이 나서고,김대표 자신이 직접 해명하는 과정을 거쳐 가려졌던 노심이 내비쳐지면서 이른바 「외압」과 박최고위원의 후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김­이대결구도가 짜여진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로선 김대표가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내에서 가장 큰 계파인 민정계를 비교적 결집시킬 수 있었던 박최고위원을 배제시켜 노심이 자기쪽으로 기울었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정관리자」 회귀예상
그리고 이미 대표최고위원이란 당2인자의 지위와 지난날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화투쟁 실적,그리고 국민에 대한 지명도에 있어 그는 당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일단 김대표쪽에 해볼만한 경선구도를 갖춰준 이상,노대통령은 당초 공언대로 「엄정 관리자」의 입장으로 회귀할 것으로 봐야 한다. 한번의 외압으로도 「6·29선언의 완성」으로까지 의미를 부여했던 자유경선의지에 손상을 입었는데 두번 다시 그러하기는 어렵다.
또 거듭된 불공정 심판덕에 누가 대통령후보가 된다면 그 당사자도,민자당의 후보경선이라는 것도 모두 국민에게 웃음거리가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말 그대로 자유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세대교체·탈지역감정의 돌풍을 맞게 될는지도 모른다.
김대표는 70년의 신민당 대통령지명대회와 77년의 당권경쟁에서 고지를 선점하고도 패배했던 원인을 깊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그래도 현재로선 김­이대결에서 불리한 요소는 이종찬 의원쪽에 더 많아 보인다. 민정계가 최대 계파라곤 하지만 노심이 머무르지 않는 민정계는 계파랄 것도 없을 정도로 응집력이 약하다. 이미 한 부분이 친김으로 떨어져 나갔고,남은 부분도 계파라기 보다는 연합세력에 가깝다.
이런 느슨한 전통여당세력을 어떻게 김대표의 야당체질과 양김정치에 대한 반대정서로 묶어 세대교체·지역감정해소 열망으로 증폭시켜 내느냐가 그의 당면과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는 지금의 불리한 위치를 뛰언 넘을 수도 있으며,그 다음 본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 앞날의 바로미터
아무튼 결과적으로 민자당의 김­이경선은 우리정치의 앞날과 관련해 꽤 의미있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구도로 짜여진 것 같다. 3김으로 대표되는 원로세대와 신세대,민주투쟁 관록과 정권내부의 경력관리,문민정치와 세대교체론이 경쟁하는 양상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자당의 경선결과는 기성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어느 정도인지,세대교체에의 욕구가 어느 수준인지를 내다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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