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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 결단 필요한'제주 해군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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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주도~이어도~대만 동쪽으로 이어지는 '제주 남방항로'는 국가의 사활이 걸린 해상로다. 원유수송선을 비롯해 전체 수출입 물량의 99.8%가 통과하는 해상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제주 남방해역과 항로는 갈등의 불씨를 지니고 있다. 이 해역은 한.중.일 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대륙붕 경계가 중첩돼 있어서다. 아직까지도 경계를 획정하지 못하고 있다.

'해상 주권'이 첨예하게 맞물린 이 해역은 해군 1(동해).2(평택).3(부산) 함대 중 3함대가 맡고 있다. 하지만 너무 떨어져 있어 정상적인 작전이 힘들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방부와 해군은 1993년부터 제주도에 해군 기동전단 기지 건설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최근 제주 해군기지가 찬반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해군기지를 둘러싼 제주도민 간의 반목이 거세진 것은 지난 11일부터다. 그날 김태환 제주지사가 '도민 여론조사'를 실시해 해군기지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 반발로 인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자 "제주 세계 평화의 섬에 부대를 건설할 수 없다"며 기지 건설을 반대해 온 시민단체 등이 들고 일어섰다.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며 여론조사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제주도청과 국방부.해군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그간 충분한 여론 수렴 작업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실제 해군은 기지 사업을 본격 추진한 2002년부터 수십 차례의 주민 설명.공청회 등을 실시했다. 2006년에는 남원읍 위미리 주민들이 해군기지 유치를 요청해 기지 건설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주민들은 기지 건설에 따른 경제 파급효과를 선택한 것이다.

해군은 내년부터 2014년까지 8000억원을 들여 제주 남부해안에 함정 20여 척을 계류할 수 있는 해군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완공되면 6000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김 지사는 19일 반대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 "5월 중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주춤거렸다. 지난 13일 김장수 국방부 장관 제주 방문 직후 관측됐던 '23~24일께 여론조사'는 사실상 물건너갔다.

그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 온 주민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는 있다. 수많은 양민이 군인에 의해 학살된 4.3사건의 악몽으로 군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대 시민단체들의 논리는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시민단체의 주장 중 "제주기지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제에 편입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국은 미국의 MD 체제에 동참하지 않아 일본과 달리 최첨단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지 못하고 있다.

또 "평화의 섬인데 왜 부대를 건설하느냐"는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미 제주에는 제주도 방어 임무만을 수행하고 있는 '제주방어사령부'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로마시대 전략가인 베제티우스)는 말이 제주도도 예외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은 제주도를 요새화했다. 제주시 한경면의 지하요새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의 알뜨르 비행장 부지 등에는 힘은 없이 평화를 사랑하던 제주도를 유린했던 일제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젠 김 지사가 결단을 내릴 때다. 김 지사가 밝혔듯이 시간을 끌수록 갈등과 불신의 골은 깊어만 갈 뿐이다. 국익과 제주 이익을 접목시킨 김 지사의 결단을 기대한다.

이철희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