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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카피캣 노이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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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승희의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 곳곳에서 모방범죄(copycat crime)가 번지고 있다. 범죄학자들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총격 사건은 다른 사건에 비해 모방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 살인 위협에 도시 내 모든 학교 폐쇄=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인근에 있는 유바시티에선 19일 관내 36개 학교가 긴급 폐쇄됐다. 제프리 토머스 카니(28)라는 남자가 지역 목사와 이웃에게 "버지니아공대 사건은 별것 아니다. AK-47 소총과 폭발물 등으로 무장하고 독극물까지 준비했다. 곧 학교를 상대로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AP통신에 따르면 경찰은 카니를 약물 중독자로 파악하고 소재를 찾아나섰다. 학교들은 경찰의 별도의 지시가 없는 한 계속 학교 문을 닫을 예정이다.

같은 날 캘리포니아주 롱비치 윌슨 고교에서는 신원불명자가 테러를 하겠다고 위협해 교사와 학생들이 45분간 학교 밖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롤링힐스 지역의 페닌슐라 고교에서도 '학교 안에 총기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교가 일시 폐쇄됐다. 텍사스 등 3곳의 대학에서도 폭발물 설치 메모 등이 발견돼 캠퍼스가 일시 폐쇄되고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 범죄 충동 밝힌 학생들 잡혀가=18일 콜로라도대 2학년 맥스 카슨은 버지니아공대 난사 사건을 토의하던 중 "대학 내 형광등부터 칠하지 않은 벽까지 모든 것이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나게 한다"며 "(조승희가) 32명을 살해한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공포심을 느낀 동료 학생과 교수가 함께 수업하기가 두렵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그는 체포됐다.

같은 날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사이프리스의 한 고교생(15)도 친구들에게 20일 학교에서 사고를 저지를 계획을 말했다가 경찰에 잡혀갔다. 사이프리스 경찰국은 "버지니아공대 사건의 영향을 받은 잘못된 영웅 심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NBC방송이 조승희의 동영상을 방송해 범인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전달함으로써 모방범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밴나이스 버밍햄 고교에서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BB총(공 모양의 플라스틱 알을 쏘는 장난감 총)을 가지고 학교에 온 학생이 경찰에 체포됐다.

◆ 부시 "수상한 행동이나 징후 땐 즉시 조치 취해야"=학교와 학생들을 상대로 한 테러 위협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9일 "학부모와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수상한 행동이나 우려할 만한 징후를 보일 때는 이를 심각히 여겨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주의 한 중학교에서 연설한 뒤 한 학생으로부터 학원 내 안전 확보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미주중앙일보=임상환.서우석 기자

◆ 모방 범죄=영화.TV 드라마와 같은 대중매체나 소설 등을 통한 간접 경험에서 알게 된 사건을 모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영어 표현은 고양이 새끼들이 어미의 행동을 보고 따라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탄저병 공포가 번지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이를 모방한 가짜 탄저병 위협 소동이 벌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1995년 개봉한 존 아미엘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카피캣'은 역대 유명한 연쇄 살인범의 범죄를 그대로 재현해 모방한 살인 사건을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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